[지금 SNS에서는]당신이 나눈 카톡 대화, 누군가 엿보고 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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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하나도 안 했다고요?”

오전 9시. 조장의 평정심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랩니다. 낮 12시까지 ‘조별과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발표 3시간을 앞두고 최종 점검을 하던 조장은 그때서야 조원 A가 ‘펑크’를 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조원은 조별과제 작업 내내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조장은 나머지 조원들을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불러 모았습니다.

“저기요, 지금이라도 빨리 해요. 안 그러면 우리 조 전체가 망해요! ㅠㅠ”(조장)

“혼자 하기 힘들면 도와 드릴게요.”(조원 B)

그러나 펑크를 낸 조원의 반응은 예상외였습니다.

“죄송한데 그간 너무 바쁘다 보니… 제가 해야 하는 부분을 나머지 조원들이 나눠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터 ‘…’, ‘헐’ 등 조원들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조장이 “어쩔 수 없으니 교수님께 상황을 말하고 ○○○ 씨 이름을 빼겠다”고 하자 펑크를 낸 조원 A는 “제가 잘못은 했지만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라며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이 대화는 요즘 SNS에서 ‘흔한 조별과제’라며 널리 퍼지고 있는 조원들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입니다.

요즘 이런 모바일 메신저 대화 장면이 SNS 인기 자료 중 하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억울한 처우를 당한 사람이 ‘이런 상황 어떻게 생각하냐’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검증받으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중에는 ‘소개팅 상대와의 대화’도 있습니다. 사당동 근처에 사는 A는 B와의 만남을 앞두고 강남역 앞에서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B는 화를 냈습니다.

“아니 어떻게 자기 집 근처로 약속 장소를 잡아요? 좀 이기적이네요.”

“헐, 저는 그냥 제안한 건데… 그럼 님이 편한 장소를 말씀해 보세요.”(A)

“아니요, 됐습니다. 전 이기적인 분과는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A)

대화는 이렇게 끝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A가 일방적이었다” “B가 너무 몰아세웠다” 등 자신이 당한 일인 듯 갑론을박을 펼칩니다.

최근에는 이런 대화가 사회를 움직인 적도 있습니다. 한 대학에서 일어난 ‘군기 문화’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대학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관등성명을 강요하고 슬리퍼, 트레이닝복 등을 입지 말라는 등 규율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이 대학 신입생 한 명이 이 사실을 온라인에 폭로한 적이 있습니다.

남이 나눈 사적인 메시지들에 다른 사람들이 몰입하는 이유에 대해 한 SNS 사용자는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누군가는 “나 억울하다”며 자신이 나눈 대화를 SNS에 올립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누가 더 잘못했는지 시시비비를 가립니다. 마치 민사 재판을 하는 솔로몬이 된 것처럼 말이죠.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는 사람과 나눈 대화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SNS에 떠돌면서 자신이 그 비난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심각한 상황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혼자 지어낸 ‘자작극’으로 확인된 대화들도 많은 상황에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고요. 오늘도 수많은 ‘남의 대화’들이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들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는 걸까요.

김범석 소비자경제부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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