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은 8일 영국 런던 도서전에서 ‘문학과 역사’란 주제로 강연을 하다 이런 말을 했다. “난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사는 것처럼 늘 역사의 중압감에 눌려 살았고 그걸 작품으로 써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작가의 역사적 책임을 사나운 마누라와 같이 살기에 비유하는 것은 흔치 않다. 황석영이 실제 사나운 마누라를 겪어봐서 저런 말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황석영의 첫 번째 부인은 소설 ‘깃발’을 쓴 작가 홍희담이다. 이혼한 후에도 동지처럼 지낸 것을 보면 사나운 마누라 계열은 아닌 것 같다. 지금 같이 사는 여성은 황석영이 드라마 대본 ‘장길산’을 집필할 때 보조로 일하던 20년 연하의 방송작가다. 황석영은 이 방송작가 때문에 재미무용가 출신의 두 번째 부인과 이혼소송까지 갔다. 그의 사나운 마누라가 정확히 누구였든 사나운 마누라와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역사의 중압감에 비교하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소크라테스의 부인 크산티페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악처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 달리 강의료도 받지 않고 가르쳤다. 돈도 벌어오지 않는 늙은 소크라테스에게 30년 이상 연하의 크산티페가 물세례를 퍼부은 걸 이해할 만하다. 누군가 소크라테스에게 아내에 대해 물었더니 “말을 타려면 거친 말을 타고 배우는 걸세. 그 여자를 견딜 수 있으면 천하에 견뎌내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사나운 마누라는 영어로 ‘shrewish wife’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Taming of the Shrew)’는 ‘성질 사나운 여자 길들이기’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셰익스피어는 주인공 캐서린을 ‘크산티페보다 더하면 더하지 못하지 않은 여자’라고 표현한다. 황석영의 사나운 마누라는 한반도의 반쪽인 북한을 의미할 수도 있다. 북쪽의 사나운 마누라와는 현실의 마누라와 달리 이혼할 수도 없다. 길들이기도 쉽지 않다. 분단국에서 사는 작가의 복잡한 심정을 토로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