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큰 현수막에 사진을 내건 후보들에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2일 03시 00분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선거철이 되니 커다란 현수막이 전국에 가득합니다. 집채만 한 사진들이 아파트에 내걸리기도 했습니다. 그 큰 사진을 어떻게 인화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도 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후보는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중년의 후보는 푸른색 와이셔츠에 소매를 걷고, 또 다른 후보는 손을 높이 치켜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델 같은 얼굴에 사진 찍는 자세 또한 잘 연출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공직에 출마하느냐고. 도대체 공공선(公共善)을 위해 목을 걸 만한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할 열정이 가슴에 불타오르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선거로 선출되는 공직은 엄중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명예나 권력욕에 에너지가 이글거리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분장으로 차지해서는 안 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비전의 사람들이 헌신의 열정에 이끌려 나서야 하는 곳입니다.

갑자기 자칭 지역경제 전문가라 하고, 또는 도시계획 전문가라 나서니 당황스럽습니다. 이 좁은 선거구에서도 그런 허구가 통할 수 있다는 게 의아하지만, 그냥 선거철의 관용이려니 생각합니다. 그래도, 민초들의 시선은 따갑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어제 택시를 탔더니 기사 양반은 ‘뽑아주면 뭘 해요. 세금만 축내는 걸’이라며 혼자 읊조리듯 반응했습니다. 오래전 세미나 토론을 위해 국회에 갔을 때는 더 기막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택시 기사가 내뱉은 말이 하도 험해 차마 지면에 그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들의 소굴’이라고 독백하는 걸 들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냥 정치는 국민 전체의 민도가 반영된 결과일 뿐이라고 체념하고 말까요? 아닙니다. 민선 4기 동안 전국의 기초단체장 230명 가운데 47.8%인 110명이 비리와 위법혐의로 기소됐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공공성에 대한 신념 없이, 공직을 개인의 명예나 영달을 위한 최종 전리품으로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들 때문입니다.

후보께서는 그러지 않으실 것으로 믿습니다. 무엇보다 깨끗하시길 소망합니다. 깨끗하기만 해도, 대학의 학점으로 치자면 A-는 됩니다. 뒷감당이 안 되는 개발공약을 무리하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은 시장(市長)이 시장(市場)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공직자들이 깨끗하고, 과도한 규제만 하지 않아도 경제는 큰 흐름을 따라갈 것입니다. 그 위에 공동체의 회복과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아이디어를 더하면 되는 겁니다. 스스로 탁견을 품은 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전문가의 식견을 빌리고 지역의 중지를 모으면 될 일입니다.

아마 뼈를 깎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뇌물의 유혹을 이기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지역경제와 민생을 살피는 일도, 아마 일주일에 한 끼 저녁 식사조차 집에서 하기 어려운 일정을 요구할 겁니다. 그래도, 살아서는 염근리(廉謹吏)가 되고 죽어서는 청백리(淸白吏)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 아니겠습니까. 지역의 발전을 일군 진정한 목민관으로 기억된다는 것 또한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가끔 만나는 지인 중에 미국에서 시장(市長)을 하다 귀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선 통보를 받자마자 ‘나는 앞으로 교통신호 하나 어기지 않는 공직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끝까지 그것을 실천했다 하더군요. 또 영국 토트네스에선 광우병 파동을 이기며 친환경 자연주의 농법으로 세계적 지역 브랜드를 키우고 은퇴 후 샌드위치 가게를 다시 연 메이던 시장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본의 아름다운 예술섬 나오시마에는 해안가 오염을 제거하고 보석 같은 미술관 마을을 탄생시킨 미야케 시장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습니다. 후보께서도 주민들이 눈물지을 만한 감동의 이야기 하나 만들어 놓으시면 어떻겠습니까?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선거#현수막#후보#공약#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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