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도 ‘당신의 재산을 달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내 재산을 가족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고민할 일이 많다.
그런데 지난달 말 관보에 게재된 고위공직자 재산 현황을 보면 13명이 본인이나 가족 명의로 된 재산을 증여하거나 증여받았다. 고위공직자 A 씨는 지난해 어머니 명의의 단독주택을 물려받았고 B 씨는 자기 명의로 된 땅을 판 돈을 아내에게 줬다. C 씨는 아들에게 상가 지분을 증여했다. D 씨 아내는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받았다. 재산공개 대상 1868명 중 504명이 직계존비속 보유 재산의 일부를 공개하지 않은 걸로 미뤄 보면 고위공직자들의 가족 간 증여는 실제로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고위공무원들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하는 문제는 접어두고 이들이 재산을 증여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배울 점(?)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증여를 통해 세금을 아끼고 있다. 우선 부모가 사망한 후 상속 받는 것보다 부모 생존 시 증여 받는 것이 유리하다. 상속세나 증여세의 세율은 넘겨주는 재산 규모에 따라 10∼50%로 같지만 세금을 매기는 방법이 달라서다.
상속세는 상속인 수에 관계없이 전체 상속재산에 대해 세금을 매긴다. 하지만 증여세는 개개인이 받는 재산금액에 따라 세금을 매긴다. 예를 들어 부모의 재산이 100억 원이고 자녀가 4명 있는데 부모가 사망한 후 상속하면 전체 100억 원에 대해 50% 세율이 적용돼 약 42억 원(각종 공제를 적용한 실제 세금)을 세무서에 낸다. 하지만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총 100억 원을 자녀 4명에게 25억 원씩 증여하면 각자 물려받는 돈 25억 원에 대해 40% 세율이 매겨져 1인당 8억3000만 원씩을 내게 돼 자녀 4명이 내는 세금은 총 33억 원이다. 부모 생전에 재산을 받아 내는 증여세가 부모 사후 상속세보다 10억 원 가까이 적은 셈이 된다. 셈이 빠른 공무원들이 이런 점에 주목해 부모를 설득했을 가능성이 있다.
공무원을 자녀로 둔 부자 부모 중에는 박봉에 나랏일 하는 자식을 위해 장기 증여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사람도 꽤 있다. 세무당국은 한 사람이 10년 내에 같은 사람에게서 받은 재산을 모두 합해 세금을 매긴다. 이 점을 감안해 10년 단위로 나눠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꺼번에 3억 원을 주면 증여세율 20%로 세금을 내야 한다. 1년에 한 번씩 3년에 걸쳐 3억 원을 줘도 세율은 20%로 같다. 10년 동안 증여한 재산을 합산해서 과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에 1억 원씩 쪼개 30년 동안 3억 원을 준다면 증여세율은 10%로 대폭 줄어든다. 30년 증여계획을 짜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하는 재력가들 사이에선 빈번한 일이라고 한다.
중앙부처의 A 과장은 몇 년 전 부동산을 처분해 마련한 대금을 따로 사는 대학생 자녀에게 증여한 뒤 자녀를 계약자(보험료 내는 사람) 및 수익자(보험금 받는 사람)로 하고 자신을 피보험자(사망위험에 노출된 사람)로 한 종신보험에 들었다. 이는 3가지 점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우선 A 과장은 글로벌 위기로 경제가 금방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자산을 처분해 금융상품에 가입했다. 부동산 가치 하락에 대비해 위험을 분산한 것이다. 이어 자녀가 독립해 1년 이상 따로 살면 재산 공개를 거부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을 감안해 사전 증여를 한 것이다. 나중에 자신이 고위공직자가 될 때를 대비한 셈. 또 보험금은 상속재산에 들지 않기 때문에 자녀는 부친 사망 후 받는 보험금 수령액에 대해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다.
일반 중산층 가정에서도 자녀 명의로 적금 통장을 만들 때 증여세를 계산해 보는 게 좋다. 매달 수십만 원씩 자녀 명의의 통장에 불입하다가 10년 뒤 적립금이 5000만 원이 됐다면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된다.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세를 물지 않고 줄 수 있는 재산은 10년 단위로 2000만 원(원금 기준)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비과세 증여금액이 10년에 5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불입액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한국 부모는 이중적이다. 자녀에게 자립을 강조하면서도 결국엔 자기들이 끼고 사는 캥거루족을 양산하고 만다. 세제상 상속보다 증여가 유리한 점을 재테크에 활용하라는 말을 자칫 ‘부의 대물림’을 조장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두렵다. 오히려 자녀에게 ‘물질적인 도움의 최대치’를 알려주고 그 이상의 삶은 스스로 개척해야 함을 가르치는 교육용으로 활용하라.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금융자산이 10억 원 이상인 회사 임원 중에는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돈을 번 ‘자수성가형’이 170명으로 상속증여를 통해 부를 쌓은 사람(96명)보다 월등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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