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문병기]마시멜로 실험과 물가안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5일 03시 00분


문병기 경제부 기자
문병기 경제부 기자
‘마시멜로 실험’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다. 1966년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 교수가 네 살짜리 꼬마 653명에게 마시멜로 하나를 주면서 15분 동안 먹지 않으면 두 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절반의 아이들은 15분을 참지 못하고 마시멜로에 손을 댔다. 15년 뒤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오래 참은 아이일수록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마시멜로의 유혹을 참지 못한 아이들일수록 비만, 약물중독 등 문제가 많았다.

실험의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시멜로에 손을 댄 아이들의 부족한 인내심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겨우 15분을 참지 못해 마시멜로를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다니….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15분 동안 손에 쥔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특히 고통을 감수하는 데 대해 확실한 보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 실험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15분을 기다렸는데도 마시멜로를 하나 더 주지 않으면 어쩌지’라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15분의 인내는 무가치한 일로 느껴지기 십상이다.

기록적인 저(低)물가 행진 속에서도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최근 상황을 보며 문득 마시멜로 실험이 떠올랐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과 가계가 투자를 위해 자금을 빌리면 통화량이 늘어나고 물가가 상승한다. 물론 현실에서는 외환시장 흐름이나 경기 전망, 국민들의 물가 인식 등 복잡한 변수들이 물가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단순화하면 아이들이 15분을 기다려 마시멜로를 하나 더 얻는 것처럼 과도하지 않은 수준의 물가 상승을 감수하면 경제 성장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월까지 17개월째 1%대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물가 흐름이나 잠재성장률 수준 등과 비교해도 이례적인 수준의 저물가다. 상황이 이런데도 설문조사를 통해 정부가 집중해야 할 정책과제를 물으면 국민의 십중팔구는 ‘물가 안정’이라고 답한다. 실제로 기획재정부가 올 초 2014년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54.1%는 ‘서민생활 안정’을 일자리 창출(40.6%)보다 먼저 꼽았다. 어느 정도의 물가 상승을 인내하면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실이 돌아오는 경제 선순환 구조의 신뢰가 깨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통화당국이 국민 눈높이에 맞춰 물가만 틀어쥐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 통화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은행은 최근 몇 년간 보인 금리 결정에 대해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금리를 움직여야 할 때를 놓쳐 경제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물가 안정 외에 금융 안정, 경제 성장 등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신임 총재를 맞은 한은도 물가 상승 등의 고통을 참으면 더 큰 결실이 돌아올 것이라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마시멜로 실험#인내심#보상#경제성장#물가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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