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째 뼈 속을 파고드는 추운 바닷물에 잠겨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어린 학생들이 느꼈을 죽음의 공포는 상상만으로도 가슴 아프다. 누군가는 기적처럼 살아오기를 전 국민이 간절히 기원했지만 안타깝게도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세월호 침몰 사고 해역을 방문하고 전남 진도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전날 정홍원 국무총리의 방문에 가족들이 터뜨렸던 울분은 ‘대통령이 내 자식 살려 달라’는 간절한 호소로 변했다. “정부가 이틀 동안 한 일이 뭐가 있느냐” “해상 구조하는 것을 못 봤다. 이게 국가냐” “우리가 속아도 너무 속았다”는 고함도 터져 나왔다.
박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모든 구조 현황을 신속하게 알려주지 않으면 관계 장관이 모두 물러나게 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강조하자 가족들은 비로소 마음을 추스르는 모습이었다. 기존의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꿀 만큼 ‘국민 안전’을 국정 목표로 제시한 박 대통령이다. 그 정부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이기에 국민은 더 분노하는 것이다.
누가 저 어린 생명을 앗아갔는가.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앞으로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번 참사는 인재(人災)다. 3등 항해사 조타수가 굽은 협수로에서 뱃머리를 급격히 돌리는 바람에 사고가 일어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고 이후의 대응은 더 어처구니가 없다. 선장과 선원들과 선주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국민은 지금 정부를 한층 원망하고 있다. 이들을 감독하고 재난대처에 철저하라고 세금을 바치는 것이 아닌가.
사고가 난 16일 오전 9시 45분 강병규 안행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가동됐지만 숫자도 제대로 못 세느냐는 비난이 이어졌다. 참사가 발생한 지 만 하루가 지나도록 탑승객 수와 실종자 수가 계속 바뀌었다. 해운법은 여객선 승선자는 이름 연락처 등을 명시한 승선신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관리 감독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틀릴 수는 없다.
더구나 안행부는 대형사고 위험이 있는 유도선·여객선 안전관리 실태 점검 등 행락철 안전 집중관리대책을 공언하며 11일 보도자료까지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대책을 내놓은 지 5일 만에 여객선 침몰사고가 터졌다. 범정부 차원의 안전대책은 늘 그렇듯 탁상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해양수산부는 사고 직후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하고도 오전 11시까지 “피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니 초동단계부터 사고 대처에 적극적 선제적으로 나섰을 리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는 잘못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날려 학부모들을 안심시켰다가 뒤늦게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혼선이 계속되자 어제서야 전남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정부사고대책본부를 꾸려 정 총리가 총괄에 나섰을 정도다.
교육부는 수학여행 안내지침에 수학여행 참여 인원을 ‘4학급 또는 150명 내외’로 정해 놓았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불과해 지키는 학교가 드물다. 제주도나 해외 수학여행이 늘면서 학생들이 여객선이나 비행기를 이용하는 빈도도 늘고 있으나 자동차에 대한 안전 매뉴얼만 있지 선박이나 비행기 등에 대한 지침은 없다. 그러고는 이번 사고가 나자 수학여행을 당분간 전면 보류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전형적 뒷북 행정이다.
국제 여객선은 국제기구에서 한 달에 두세 번 비상훈련 점검을 하고 이 훈련에 응하지 않으면 아예 운항을 못하게 한다. 국내 여객선도 법에는 10일에 한 번 비상훈련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독기관인 해수부와 해양경찰청이 제대로 감독을 안 하고, 선사(船社)들이 감독에 불응해도 처벌 규정이 없다. 세월호의 구명벌(천막처럼 퍼지는 구명보트)은 46개 가운데 1개만 펴졌고, 구명조끼도 270개로 승객 수보다 적은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배가 올해 2월 선박 정기 검사를 버젓이 통과했다.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켰는지, 검사 통과에 비리는 없었는지 의심스럽다.
1분 1초가 안타까운데 어제 기상 악화로 실종자 수색작업이 난항을 겪어 국민을 더욱 비통하게 만들고 있다. 추가 구조자가 이틀째 없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이다. 1993년 292명을 희생시킨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그런 후진국형 사고는 다시 없을 줄 알았다. 19세기 박제가는 ‘북학의’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배가 중국 배에 비해 얼마나 형편없는지 설명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조선업이 세계 1위에 올랐다지만 배를 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는 19세기에 머문 듯하다.
하드웨어는 발전했으나 이를 움직이는 사회 시스템과 국민의식은 발전하지 못했다. 그 대가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우리 아이들이 치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4월 16일을 ‘안전 국치일(國恥日)’로 삼아, 이 부끄러운 나라를 미래세대에 물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