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참사 특별기고/공경희]우리는 진정 아이들을 귀하게 여기는 걸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8일 03시 00분


공경희 번역가
공경희 번역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어떻게 ‘참사’라는 말 한마디에 그 시간 아이들이 겪었을 두려움과 절망을, 가족들이 겪는 슬픔과 아픔과 그리움을 담는단 말인가.

진도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한 후 나는 내내도록 서성대고 있다. 가슴이 먹먹해서 속보 제목만 확인할 뿐 기사를 보지 못한다. 도저히 볼 수가 없다. 사고가 일어난 뒤의 우왕좌왕하는 상황을 보니 답답하고 화가 난다. 아이들의 사연이나 젊은 선생님과 선사 직원, 승객들의 희생담은 가슴 아파서 차마 읽을 수가 없다. 지옥 속을 헤매고 있을 부모들을 생각하면 딸을 둔 엄마로서 심장이 쪼그라든다. 감히 위로의 말조차 건네기 힘들다.

33년 전 다녀온 경주 수학여행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여고생이 여행을 간다는 게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고, 특히나 수학여행은 학교를 벗어나 처음 사복을 입고 친구들과 먹고 자면서 놀 수 있는, 그야말로 고교 시절 딱 한 번 허락된 일탈이었다. 여관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사이키 조명 대신 셀로판지를 붙인 손전등을 돌리면서 벌인 춤판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지만 체육대회, 합창대회와 더불어 고교 시절의 가장 즐거운 추억이다.

그런데 오늘 떠오른 생각, 600명 이상이 한꺼번에 움직였던 그때 그 여행은 어떻게 준비되고 진행되었던가. 일정과 비용, 준비물이 적힌 몇 줄짜리 가정통신문 한 장이 준비의 전부였다. 기차와 버스 이동 중 사고가 일어날 경우는 물론이고 600명이 한 여관에 머무는데도 화재 발생 시 대처 방법에 대한 교육 따위는 없었다. 그저 밤에 담임선생님이 방에 한 번 다녀간 것이 안전 점검의 전부였다. 이제 와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러면 33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어떤가. 세상이 변했고 요즘 아이들은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관심과 보살핌을 받는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와 프로그램도 많다. 그런데 매번 아이들이 희생되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가 어이없을 정도로 기본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행사를, 프로그램을 왜 진행하는가.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도움이 될 경험을 하게 하려고. 그러면 모든 출발점은 아이들이어야 한다. 아이들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과 태도에서 일이 진행되는 것이 맞는데, 과연 우리는 어떤가.

6년 전 이맘때 미국에 머물렀다. 딸아이는 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중학교 졸업 여행을 가게 되었다.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인 워싱턴 여행을 위해 두어 달 전부터 가정통신문이 오기 시작했다. 제법 복잡한 여행 승낙서에 서명을 해서 보내고 여행비를 수표로 부쳤다. 여행비에 포함된 학교 티셔츠는 갈아입을 것까지 고려해 두 가지 색깔, 두 벌이 한 세트였다.

또 아이가 음식이나 약품에 알레르기가 있는지, 복용하는 약이 있는지, 주치의 연락처 등에 대한 건강 관련 조사까지 학교와 가정 사이에 여러 가지 서류가 오갔다. 또 학생들은 여행과 관련된 일정 및 정보뿐 아니라 비상사태 및 안전 문제에 대한 안내문이 망라된 책자를 받았다. 각자의 방과 비상구가 표시된 호텔 객실 배치도까지 들어 있었다.

거기다 출발 며칠 전 학교는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일하는 부모들을 고려해서 모임은 오후 8시에 시작되었다. 2박 3일 여행이 왜 이리 요란스러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가보니, 밤중에 무슨 축제나 열린 듯 부모에 동생들까지 강당이 북적댔다. 교장이 여행에 대한 설명을 했고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상세한 안내 책자를 받았는데 뭐 이리 물을 게 많은지. 학교가 알아서 할 텐데 융통성 없는 사람들이라고 속으로 흉을 봤다. 하지만 진지하게 오가는 질문과 대답을 들으면서 자녀의 여행을 대하는 부모들과 학교 측의 태도에 놀라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즐거운 여행을 하도록 어른들은 심각하고 진지한 태도로 접근하고, 한편으로는 온 동네의 행사로 삼아 즐기는 분위기가 새로웠다.

돌이켜보면 그 꼼꼼한 준비 과정은 바로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이다. 예년대로 진행하면 된다고 가볍게 넘기지 않는 것, 많은 인원이 움직일 때 일어날 수 있는 착오나 사고를 예상해서 해결 방법과 절차를 미리 마련해두는 것이 진짜 관심이다. 거기서 나아가 정해진 대로 돌아가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 그것이 진짜 보살핌이다.

‘일’보다 아이들의 마음과 상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지금 엄청난 사고를 당해 몸과 마음이 늪에 빠진 것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거짓말 같은 끔찍한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보살피려 애써야 한다.

늘 하는 대로 사고 원인, 처리, 방지, 책임 운운하며 대응책을 마련해야 된다는 말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니까, 진짜 관심과 보살핌을 베풀기 위해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그런 순서여야만 이 슬픔을 딛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감히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공경희 번역가
#세월호#진도여객선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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