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공개된 세월호와 진도연안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 내용은 이 배의 선장과 선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무능했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급선회한 시각이 16일 오전 8시 48분. 8시 55분 제주VTS에 “배가 넘어간다”고 통보한 뒤 10시 45분 선체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그들은 뱃사람으로서의 직업윤리는커녕 최소한의 양심도, 인간으로서의 도리마저 저버린 모습이었다.
세월호는 출항 시 고정시켜 놓은 제주VTS와의 교신 채널을 진도VTS 해역에 들어서면 바꿔야 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아 최초 교신을 제주와 했다. 이 때문에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진도VTS와의 교신이 12분이나 늦어졌다. 진도VTS는 세월호에 승객 탈출을 결정하라고 거듭 재촉했지만 세월호는 “구조대가 언제 오느냐” “탈출시키면 바로 구조가 되느냐”고만 되물었다. 진도VTS와 교신이 시작된 후 12분이 지났을 때 세월호는 이미 50도 이상 기운 것으로 나온다. 이 정도면 이미 절벽과 같은 기울기여서 사람이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힘든 상태다. 사고 직후부터 30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대형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게 아닌가.
선장 이준석 씨는 퇴선(탈출)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하지만 교신 내용에선 그런 흔적이 없다. 승무원들이 워키토키를 통해 10여 차례 승객을 탈출시킬지 물었으나 답이 없었다고 한다. 통상 매뉴얼대로 ‘구명조끼를 입고 제자리에 앉아있으라’고 방송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배가 침몰할 무렵엔 해경만이 아니라 민간 어선 40여 척도 구조 활동에 대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바다에 뛰어내리기만 해도 살 수 있었다.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대부분은 사고 직후 가장 빨리 탈출할 수 있는 브리지에 올라가 있었다. 그들만 다니는 통로를 이용해 모두 탈출한 것도 모르고 순진한 학생들은 공포 속에서도 안내방송만 믿고 자리를 지키다 배와 함께 침몰했다. 이번 참사는 ‘모두의 잘못’이랄 수 없다. 이들의 잘못이 가장 크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때 선장이 배와 운명을 같이한 이후 이것이 ‘전통’이 됐지만 최근 2년 사이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선장이 승객들을 침몰선에 버려놓고 제일 먼저 달아난 일이 벌어졌다”며 “자랑스러운 국제적 전통을 깬 것이어서 해양 전문가들에게는 충격이다”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 그 자체도 어처구니없지만 사고 이후 아무런 조치 없이 제 살기에만 급급했던 그들이 선장과 선원의 영혼을 지녔는지조차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