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현종]위기관리의 ‘열 번째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2일 03시 00분


‘예상할수 없는 것을 예상하라’ 삼성 사장단의 위기관리 회의
후진국형 참사 낸 세월호는 온갖 사고요인 싣고 묻지마운항, 정부는 수습대책 허둥지둥
국민 안전-재난 관리시스템… 언제나 선진국 수준이 될까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전 유엔 대사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전 유엔 대사
국가안보의 개념에는 군사력 같은 하드파워도 존재하지만 경제, 위기관리 능력, 치안력 같은 소프트한 측면의 안보요소도 포함된다. 실질적인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위기관리 능력 분야에서도 선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조선업계에서 1등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청해진해운이 18년짜리 폐선이 다 돼 가는 일본 여객선을 수입한 뒤 증축하여 운항하다 있을 수 없는 비극적인 후진국형 인재를 일으켰다. 우리는 이런 대형사고를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월드워Z’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유엔 소속 조사관 제리는 인류의 대재난을 막기 위해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은 이스라엘에 가서 ‘10th Man’(열 번째 사람)을 만난다. 유대인 대학살, 중동에서의 전쟁이 불가능하다는 대다수의 예상이 빗나가자 이스라엘은 ‘열 번째 사람’이란 역할을 만들어 다른 아홉 명의 의견과 반대의견을 내게 하고 그것이 아무리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도 그에 대비한 준비를 하게 한다.

매주 수요일 오전 8시에 열리는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는 위기를 관리하는 사장들에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을 예상하라. 그리고 예상할 때는 예상 못할 것을 감안해서 예상하라”고 요구한다. 각 부처에 이런 기능을 하는 ‘열 번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청와대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기능을 외교안보통일에만 국한해서는 안 되며 경제, 사회 및 국민안전까지 고려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 화산 폭발 가능성이 있는 백두산 근처의 중국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할 경우 또는 국내 백화점이나 지하철 등에 동시다발적으로 테러가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재난 관리 및 방지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해야 한다. 이스라엘에는 안보를 담당하는 모사드와 경찰 사이에 국내 보안을 전담하는 신베트, 미국에는 중앙정보국(CIA)과 경찰 사이에 연방수사국(FBI)이란 조직이 있다. 우리도 국민 안전 및 치안을 관할하는 신베트와 FBI 같은 우수한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경쟁을 도입하면 국민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는 향상되기 마련이다. 국민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학교폭력, 성폭력, 주폭 문제부터 사이버테러에 이르는 문제들을 적극 해결해 주길 바랄 것이다.

가장 큰 위기관리가 필요한 것은 통일이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 우리 정부의 대처능력을 보고 북한 수뇌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통독 과정에서 보았듯이 대한민국이 선진체계를 갖춘 선진국으로 간주되어야 주변 열강들의 한반도 통일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100 대 1이라는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하루빨리 우리 내부의 위기관리 능력부터 질적인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안전에 대한 선진기준을 기업과 정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준비와 대응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인상해서라도 국민들의 안정된 삶을 지탱할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사회는 압축성장을 한 결과 곳곳에 부족함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다. 우리 국민들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 당시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 일제의 빚을 갚았고 90년 후 금을 모아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며 2002년에 월드컵 4강까지 올랐다. 우리의 희망은 젊은 세대에서 볼 수 있다. 46개나 되는 구명정 중 처음 펼쳐진 구명보트를 타고 가장 먼저 탈출하여 병원에서 기껏 젖은 지폐나 말리고 있던 선장과는 대조적으로 22세인 박지영 승무원은 자기 목숨을 희생하며 학생들을 구조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는 구명조끼를 왜 입지 않느냐고 묻는 학생들에게 “선원들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 친구들 다 구해주고 난 나중에 갈게”라고 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비통함을 금할 수 없으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김현종 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전 유엔 대사
#세월호#국민 안전#재난 관리시스템#선진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