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인물들이 차렷 자세로 앞을 바라보고 서 있다. 두 여자는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데다 옷차림도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오른쪽 여자의 얼굴이다.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를 커다란 꽃 한 송이가 대신 차지하고 있다.
이샛별은 왜 두 여자를 복제인간처럼 똑같이 닮게 그렸을까? 그리고 오른쪽 여자의 얼굴을 꽃으로 가린 이유는 무엇일까?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리고 거짓으로 자신을 꾸미며 살아가는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왼쪽 여자는 본연의 나, 오른쪽 여자는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있는 나, 즉 ‘페르소나’다. 페르소나는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특정한 상황이나 목적을 위해 쓰게 되는 가면을 말한다.
왼쪽 여자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내면을 응시하는 나라면, 꽃 가면을 쓴 여자는 겉모양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나의 페르소나다. 새를 연상시키는 어두운 그림자는 겉모습과 내면이 다른 나를 발견하고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마음상태를 뜻한다. 루이제 린저의 수필집 ‘고독한 당신을 위하여’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아닌 자기 모습을 만들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인간의 삶을 사는 것이지요. 결점이 있고 연약하고 확신도 없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요.’
이샛별은 한 사람이면서 두 사람인 나,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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