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땅’ 고구려… 전쟁 나선 수만대군 갑옷도 번쩍번쩍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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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철 교수의 고구려 이야기]<10>

평양시 진파리 7호무덤에서 나온 해뚫음무늬 금동관 장식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석하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평양시 진파리 7호무덤에서 나온 해뚫음무늬 금동관 장식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윤석하 사진작가가 촬영한 것이다.

윤명철 교수
윤명철 교수
고구려는 무려 700여 년 동안 서북방으로는 군사대국인 북방유목종족과 서남방으로는 정치 강대국인 중국지역과 경쟁하면서 강대국으로 존재했다. 농업, 목축업, 어업이 발달하였고, 이를 뒷받침할 토목공학, 과학, 군사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가장 강력한 토대가 있었으니 바로 풍부한 자원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 부가가치가 높은 자원은 금이다. 고구려는 전성기 때 북위에 매년 금 400근, 백금(은) 400근이라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양을 보냈을 정도로 풍부했다. 영양왕은 일본이 최초 사찰인 아스카(飛鳥)사를 세울 때 황금 300냥을 보내 불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 연개소문도 당 태종에게 다량의 은을 보낸 적이 있다. 귀족들은 저택과 의복들을 금, 은으로 화려하게 치장했고 죽어서는 금과 함께 묻혔다. 고구려 유물 중에는 금관, 금동불상, 금동등자, 금동재갈 등을 비롯해 금동화살촉까지 있다.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에는 645년 고구려와 벌인 전투에서 1만 벌의 명광개를 노획했다는 기록이 있다. 명광개는 옻칠 또는 금도금을 해서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게 만든 특수 갑옷이다. 황금빛 갑옷을 입은 1만 명의 고구려 병사를 상상해 보라, 대단하지 않은가.

평양시 청암리 토성에서 나온 금동관의 모습. 조선유적유물도감에 수록돼 있다.
평양시 청암리 토성에서 나온 금동관의 모습. 조선유적유물도감에 수록돼 있다.
고구려는 압록강 남쪽 운산이라는 곳에 이미 금광을 가지고 있었으나, 광개토대왕이 황금의 산지인 부여를 점령하면서 진정한 황금의 나라로 부상했다. 황금의 땅 고구려는 이민족들로 하여금 끝없이 군침을 돌게 한 매력적인 땅이었다. 그래서 수시로 침략했고 금제 유물을 찾아 무덤을 파헤치곤 했다.

고구려는 전국 곳곳에 은 광산을 개발하여 1년에 몇백 근씩 수출할 정도로 은도 풍부했다. 중국 기록에는 고구려 은 광산에 수백 가호가 있어서 은을 채굴하고 제련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현대에 들어와 필수적인 자원은 석유이지만 과거 철기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은 철이었다. 철은 무기, 농기구를 비롯한 모든 도구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철을 캐고 다루는 대장장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파이스토스처럼 신으로 추앙받거나 신라의 석탈해처럼 임금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철광 지대는 요동반도 남부 일대이다. 바로 고구려의 요동성(요양시) 안시성(해성) 건안성(안산시)이다. 현대의 대유전과 비유할 수 있는 요동의 철광산을 놓고 동아시아는 끝없는 전쟁을 벌였다. 고구려는 두만강 남쪽에도 철광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광개토대왕은 요동을 수복해 철광업을 본격적으로 발달시켰다.

자원이 많으면 자원제조기술인 화학기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고구려는 금 가공뿐 아니라 광석을 녹여 단련한 다음에 강철로 만드는 철 가공 기술도 가지고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발굴된 고구려 철기들을 금속화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요즘 강철 제품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정도인 양질의 제품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고구려는 이 철 제품들로 군사력을 키웠고 한편으로는 실위(북만주 유목종족으로 이 중 일부가 몽골의 조상이 된다) 같은 외국으로 수출한 것이다.

중국 집안시 광개토태왕릉 구역에서 나온 말 등자.
중국 집안시 광개토태왕릉 구역에서 나온 말 등자.
한편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1904년에 벌어진 러일전쟁에서 해성, 요양 같은 철 광산지대에서 전투가 치열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만주를 점령해 세운 안산 제철소에서 생산된 제품들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켰고, 이후 중국은 1970년대까지 이곳을 경제발전의 견인차로 삼았을 정도였다.

고구려가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자원이 있었으니 바로 ‘숲’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만주 하면 춥고 논농사도 안 되는 가치가 없는 땅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렇게 교육받은 탓이다. 또한 지평선과 초원이 펼쳐져 있는 광활한 평지만을 생각하고, 고구려를 기마민족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하지만 송화강 하류, 백두산 산록, 목단강과 흑룡강 중류, 우수리 강 일대는 지구상에서도 손꼽히는 밀림지대이다. 이곳에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 참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자작나무 같은 곧고 단단한 침엽수들은 엄청나게 부가가치가 높은 나무이다.

나무는 고래로부터 매우 중요한 자원이었다. 나무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가 없고, 강도 높은 토기나 단단한 철제 무기도 만들 수 없다. 무엇보다 배를 건조할 수 없으니 사신단과 무역선을 보낼 수 없어 장거리 해외 무역도 불가능하다.

만주는 숲이 발달해서 생태계가 풍부하고, 온갖 동물들과 약초, 어류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호랑이 곰 표범 여우 살쾡이 원숭이 담비뿐만 아니라 흰 사슴, 흰 노루, 자색 노루 등도 서식했는데, 이 동물들 대부분은 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는 모피가공업이 발달해서 옷이나 무기는 물론이고 신발까지도 황색가죽신을 신을 정도였다. 이것들은 중요한 수출품이었다. 동천왕이 오나라의 손권에게, 장수왕이 남제에게 보낸 선물도 담비가죽이었다. 훗날 발해인들은 호랑이가죽 표범가죽 곰가죽 담비가죽, 심지어는 돼지가죽 다람쥐가죽까지도 주변 국가들에 수출했다. 장수왕 시대에 전해준 모피기술은 일본 숙피(熟皮)기술의 시조가 되기도 했다. 17세기 이후 러시아가 우랄 산맥을 넘어 동토의 땅인 동시베리아로 진출한 이유 중의 하나도 국가의 재정을 위해 모피, 그중에서도 담비가죽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만주의 숲과 그 안에 서식하던 많은 동식물들은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자원이었던 것이다.

역사상의 대전쟁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자원 확보를 놓고 벌어진다. 한국은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 국가이다. 철, 중석, 희토류 등의 지하자원은 대부분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오히려 중국이 이를 실어 나르고 있다. 또 과거 고구려 영토였던 중앙아시아에는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 등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는데, 혈연 언어문화가 가까운 우리는 정작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남북통일과 중앙아시아 진출, 이는 자원부국으로 강대국의 반열에 들었던 고구려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윤명철 교수
#고구려#풍부한 자원#금#명광개#철#숲#화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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