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밤 12시에 임박했을 때다. 진도 팽목항으로 들어오는 시신들과 유족의 임시 대기소 사이 60여 m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었다. 취재진은 그 뒤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셔터를 누르려는 순간 실종자 가족 대표가 촬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카메라를 가만히 내려놓았다. 잠시 후 텐트 속에서 날카로운 오열이 들려왔다.
이틀 전만 해도 기자들이 근접촬영을 했다고 한다. 폴리스라인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기자들을 통제하는 책임자도 없었다. 초동 대처부터 구조작업 어느 것 하나 시스템을 갖추고 움직인 것이 없었다. 보도하겠다고 덤비는 취재진의 모습도 가족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것 같다. 실종자 가족들은 취재진에게 적개심에 가까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망자 명단이 적힌 안내문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빨간 글씨가 선명하다.
기자 또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실종자 가족의 분노와 오열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현장에서 쏟아지는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데도 공감한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스템에는 우리 언론의 취재 행태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진도 현장에는 사진기자 경력 25년 이상의 베테랑 선배들도 투입돼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등을 취재한 그들에게도 지금의 진도는 황망함 그 자체이다.
현장으로 떠나는 후배 기자들이 마음이 무겁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올린 페이스북 글에 “이미 마음속으로 펑펑 울면서 일할 거라 생각해”라고 댓글을 올린 선배도 있었다. 한 선배는 “바꿀 수만 있다면 바꾸고 싶다. 못난 이 늙은 것들하고…”라고 올렸다. 그들 중 일부는 자원해 현장으로 왔다. 이미지로 이 참혹함을 기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에. 지난 20년간 우리는 무엇을 해왔나 하는 자책감이기도 하다.
한국 언론의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이 생긴 것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다. 1996년 2월 신문윤리강령개정위원회는 신문윤리강령 및 실천요강 개정안에 재난취재 부분을 추가했다. “기자는 재난 취재 시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재난자의 치료를 방해해서는 안 되며 재해 피해자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 이후에도 한국기자협회는 재난보도 공동 가이드라인 초안을 만들었다.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인 20일, 한국기자협회는 다시 재난보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23일에는 정부 관계자, 재난 전문가, 시민단체, 학계, 언론계가 참여하는 세미나를 연다고 한다. 이번에는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재난을 당한 가족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뿐만 아니라 포토라인을 누가 칠 것인지, 현장 취재의 복장은 어떠해야 하는지 등 세부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 어렵다는 핑계가 오늘의 우리 사회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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