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49>때까치 그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때까치 그리기
―양해기(1966∼ )

때까치 한 마리가
내 손끝에서 저항하며 길길이 날뛴다
고개를 비틀며 벗어나려 애쓰다
부리로 내 손을 쪼아대기 시작한다

까치는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

나는
까치의 흰색 죽지까지 강제로 비틀어
도화지 속에 구겨 넣었다

결국
고개를 비스듬히 돌린 상태로
웅크리고 힘을 모으고 있는 상태로
까치는,
엉거주춤 그려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발레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같이 춤을 배우자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진 내가 주선한 자리다. 어여쁜 소녀들 틈에서 뚱뚱하고 나이 든 여인들이 생전 처음 발레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내가 발리댄스라 한 줄 알았다는 친구는 두어 달 뒤 그만 뒀고 나는 나름 열심히 다녔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발레도 인간의 차원을 확장한다. 중력을 넘어 공간을 넘어. 전신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그 힘든 ‘짓’을 아름답게 해내는 황홀함은 짐작만 하고, 나는 내내 마룻바닥에 악착같이 달라붙는 발바닥을 떼어내느라 버둥거렸다. ‘몸을 최대한 납작하게 만드세요.’ 발레선생님의 그 말씀을 지금도 이따금 떠올리며 나는 3차원을 퉁퉁히 채우는 몸통을 2차원으로 넣자고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쫙 몸을 편다.

화자가 때까치를 꼭 쥔 장면으로 시가 시작된다. 독자도 손끝에 때까치의 팔팔한 저항을 느낀다. 맹렬히 쪼는 때까치 부리에 손가락이 움츠러든다. 그만큼 생생하게 그려진 이 장면은 그러나 실제 상황이 아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소재를 이렇게 움켜쥐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사물이 사나울 정도로 성질이 살아 있는 채 감각에 잡힐 때, 화가는 얼마나 두근거릴 것인가. 그러나 그걸 그리기는 야생의 때까치 길들이기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종이라는 2차원 공간에 3차원, 4차원, 5차원…을 ‘강제로 비틀고’ ‘구겨 넣는’ 화가의 완력이여, 저항하는 사물들이여. 깔끔한 짜임새에 유머러스하기도 한 양해기 시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시다.

황인숙 시인
#때까치그리기#양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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