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매뉴얼은 누가 지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4일 03시 00분


몇 년 전에 지인의 자동차를 탄 적이 있다. 껌을 찾을까 하여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수납공간을 열었더니 그분이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어? 이런 것도 있었네!” 그분은 자동차를 산 지 2년이 되도록 차 안에 그런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나도 흉을 볼 처지는 아니다. 자동차든 휴대전화든 그 기능의 반의반도 못쓰고 있을 터. 매뉴얼을 읽지 않았으니 어떤 기능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은 매뉴얼을 보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을 사오면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고 전기코드부터 꽂는다는 것. 대부분 이런 식의 글은 선진국과 우리를 비교하여 자존심을 확 긁어놓는다. 확실한 근거를 댈 수 있느냐는 의심이 들지만 찔리는 바도 없지 않아서 오기로라도 설명서를 읽고자 매뉴얼을 펼쳤다. 솔직히 너무 재미가 없고 장황하여 끝까지 읽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째 우리는 참담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 앞에서 속속 드러나는 우리의 무원칙 무대책 무책임 등등에 화가 나고 부끄러움과 자책감으로 괴롭다. 사고 원인과 현지 상황과 앞으로의 대책 등이 반복적으로 보도되는 속에서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가슴을 찌른다.

기능에서든 운영에서든 매뉴얼은 기본 지침서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기본을 경시하고, 기본을 지키려는 사람까지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운전하면서 왕복 4차로의 동네 건널목에 정지해 있을 때, 건너는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빨간불이어도 뒤차에 눈치가 보인다. 차를 슬금슬금 들이대며 압박하거나 옆으로 휙 추월해 가며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불안감을 이기지 못해 출발했다가 혹시 사고가 나면 눈치를 주던 뒤차 운전자는 점잖게 나무랄 것이다. “신호를 잘 지켜야지, 요즘 사람들은 교통법규를 안 지킨다니까!” 항상 결과가 더 우선시되는 사회에서는 매뉴얼을 지키기 어렵다.

우리는 왜 매뉴얼에 약한가. 매뉴얼대로 하는 것은 평소 습관이다. 그래서 비슷한 사고를 당할 때마다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지만 고쳐지지 않고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좀 제대로, 매뉴얼대로 행하는 사회로 바뀐다면 소중한 생명들의 희생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는지…참으로 아프고 안타깝다.

윤세영 수필가
#매뉴얼#기능#사용설명서#세월호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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