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요즘이다. 울분과 무력감이 엄습한다. 도대체 꽃다운 애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는 나라가 어디 있나. 그런데 일이 벌어진 이후에도 염장 지르는 일이 너무 많다. 후안무치 선장, 복지부동 공무원, 유명무실 재난대응, 인면수심 유언비어….
‘염장 지르다.’ 누군가가 약을 올리거나 ‘복장 터지는’ 말을 할 때 언중이 많이 쓰는 표현이다. ‘염장 지르는 행동’이 ‘염장질’이다.
‘염장 지르다’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 세 가지 설이 있다. 염통(心臟)의 ‘염’과 오장을 뜻하는 장(臟)에 ‘지르다’가 붙었다는 설이다. 염통과 오장을 힘껏 내지르니 매우 아플 것이다. 두 번째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를 근거로 한다. 통일신라의 해상왕 장보고는 자신의 심복이던 염장(閻長)의 칼에 암살당하면서 해상왕국의 꿈이 무너졌다. 이를 빗대어 마음 아픈 일을 당하면 ‘염장이 칼을 지른다’라는 표현이 나왔다는 것. 세 번째는 ‘소금에 절여 저장한다’는 뜻의 염장(鹽藏)에 ‘지르다’가 붙어 생겨났다는 설이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말도 있는데 이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경남지방에서는 ‘염장 지르다’와 똑같은 의미로 ‘보골 채우다’라는 말을 쓴다. ‘보골’은 ‘허파’의 방언이다. 허파는 ‘부아’와 같은 말이므로 ‘보골 채우다’는 ‘부아를 돋우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염장 지르다’는 인간의 오장육부와 더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달쯤 전에도 이 말이 쓰였다. 카드 3사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 와중에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며 개인정보 유출이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 민초들의 속을 한 번 더 뒤집어놓았다. 보다 못해 여당 의원이 “국민의 염장을 지르고 성난 민심에 불을 지르는 발언”이라고 질타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어대사전’(2009년) 등은 언중의 입말을 반영해 ‘염장 지르다’를 표제어로 삼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즐겨 찾는 국립국어원 웹사전에는 아직도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말에 ‘공인성’을 부여하는 사전 편찬자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음은 십분 이해하더라도 아쉬운 대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 안전’을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 약속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민들 마음속에서는 ‘천불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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