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응시하니 모든 돌이 보석이었다. 모래알도 모두가 보석이었다. 반쯤 투명한 것도 불투명한 것도 있었지만 빛깔도 미묘했고 그 형태도 하나하나가 완벽이었다. 모두가 이름이 붙어 있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이러한 보석이 발아래 무수히 깔려 있는 광경은 그야말로 하늘의 성좌를 축소해 놓은 듯 일대 장관이었다. 또 가만히 응시하니 그 무수한 보석들은 서로 빛으로 사방팔방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 빛은 생명의 빛이었다. 이러한 돌밭을 나는 걷고 있었다. 그것은 기적의 밭이었다. 홀연 보석밭으로 변한 돌밭을 걸으면서 원래 이것이 보석밭인데 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있는 것 모두가 빛을 발하는 영원한 생명의 밭이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이다.
오래된 5층 건물이었다. 작은 간판만 없으면 정신병원이란 사실을 눈치 채기 힘들 것 같았다. 일본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에 인접한 소박한 이 건물이 현대미술 거장의 반열에 오른 85세 여성 작가가 37년째 살고 있는 ‘집’이다. 일명 ‘땡땡이 그림’, ‘폴카 도트(polka dot)’ 작업으로 명성이 높은 구사마 야요이 씨는 날마다 병원에서 길 건너 스튜디오로 출퇴근한다. 화려하고 안락한 삶 대신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작품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다음 달 서울서 개막하는 ‘쿠사마 야요이’전을 앞둔 작가를 지난주 도쿄 출장에서 만났다. 사납고 모진 운명을 눈부신 예술로 승화시킨 불굴의 여정을 그는 담담히 얘기했다. 열 살 무렵 물방울무늬 잔상이 온 집안에 겹쳐 보이는 환각 증세에 시달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강박증으로 고통 받는 어린 딸에게 자주 매를 들었다. 온갖 악조건에도 ‘살아내야 한다’는 뜨거운 열망으로 분투한 결과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창조했다.
반세기 넘게 활동하면서 그는 평단과 대중이 두루 공감하는 경이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두려움 없이 맞섰던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성찬경 시인의 ‘보석밭’이 떠올랐다. 생전에 집 마당에 버려진 고물을 모아놓고 ‘물질 고아원’이라고 이름 붙여 쓸모와 쓸모없음을 차별하지 않았듯이 시인의 밝은 눈은 돌밭과 보석밭도 구분을 두지 않는다. ‘원래 이것이 보석밭인데/우리가 돌밭으로 볼 뿐이 아닌가’란 구절이 매서운 시련을 버틸 수 있는 용기를 깨우쳐 준다.
인생이 시어빠진 레몬을 주면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이 있다. 큰 우환이 닥친 요즘은 까마득한 절벽 위를 두 눈 감고 걸어가는 것만 같다. 사는 게 참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대로 삶의 공포 앞에 무릎 꿇거나 물러설 순 없다. 구사마 씨의 말, “살아내야 한다”를 생각해본다. 사는 것이야 생명 가진 뭇 동식물이 하는 일이고, 살아냄이야말로 인간의 일인가. 하루하루 두서없고 마음이 우왕좌왕 중심을 잃을 때마다 되새기는 금언이 있다. ‘내가 바라는 것만큼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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