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존엄 망각한 사회… 조합-업계-관료 ‘검은 결탁’ 어디 해운업뿐이겠는가
또 하나의 비리 온상 원전… 원전마저 터지면 감당못할 재앙
모두가 새출발 염원하는 지금 단순 ‘정부 3.0’ ‘규제개혁’ 넘어 정부역할 재정립, 관피아 척결을
이종수 연세대 교수·행정학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어떤 글도 성립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부조리로 어린 영혼들을 수장시키고, ‘구조’라는 말을 쓰기 부끄러운 2주를 보낸 후, 이제 가족들에게 시체 한 구씩을 나눠주고 집으로 가라고 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집단적으로 망각하는 사회에 ‘골든타임’의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될 리 없었다. 하늘의 경고도 계속 외면해 왔다. 삼풍백화점 502명, 성수대교 32명, 서해훼리호 292명 사망. 귀머거리 사회에 대한 고통스러운 채찍이었을까, 타인의 아픔을 느끼기에 너무 둔감해진 우리들 가슴까지 통증이 전해온다. 마지막 남은 건 비리로 얼룩진 원전이다. 여기에 원전 사고까지 터지는 날이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것이다.
솔직히, 돈 몇 푼이면 증축에 혈안이 되는 게 세월호뿐이었는가? 낙하산이 한국선급에만 있는가? 골프 접대와 상품권이 거기만 있었던가? 조합-업계-관료의 부정한 결탁이 해운업계뿐일까? 구명정이 펼쳐지지 않는 게 이번뿐이겠는가? 화물적재 용량을 초과하는 게 이 배뿐인가? 안전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정상’으로 표시를 해놓는 게 여기뿐인가? 입법 미비로 과오를 저지르는 게 해양수산부뿐인가?
모두 새 출발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쉽게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회는 더 느리게 변화한다. 이 속에서 우리가 접근로를 찾고, 불행을 수습하여 탄탄한 배를 만드는 일차적 과제를 정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안전 관련 부문만 손을 보아 될 일이 아니다. 재난=위험=부패=특혜라는 공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재창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정부의 가치와 능력 그리고 역할을 재검토하여 정부-민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번 사고의 발생원인, 위기 대응, 구조과정에서 나타났듯 정부는 이제 개발연대의 정부가 아니다. 과거에는 정부와 관료가 사회발전을 이끄는 조타수의 역할을 했고 국민은 무조건 따랐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다. 정부는 규범과 능력에서 민간에 뒤지고, 국민은 그런 정부를 믿지 않는다. 이제 정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 강력한 ‘공공성’의 담지자가 되고, 민간을 지원하고 활용하는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단순한 ‘정부 3.0’이나 규제개혁을 뛰어넘는 구상과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둘째, 부패와 위험을 치밀하게 통제하는 투명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는 사람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모든 부패와 위험은 내부자들이 가장 잘 아는 법인데, 그에 관해 진실을 말하고 부당한 것을 폭로하도록 유인하지 않으면 개선이 불가능하다. 세월호만 해도 과거 침몰할 뻔한 사실, 평형수를 빼고 화물을 몇 배씩 과적한다는 사실, 구명정을 쇠사슬로 묶어 놓는다는 사실, 해운조합과 한국선급엔 부조리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 주었어야 한다.
미국은 스위스계 은행인 UBS의 부정을 브래들리 버켄펠드라는 직원이 폭로했을 때, 그에게 1170억 원을 보상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평균 3000만 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보호는커녕 조직의 2차 보복에 의해 나가떨어져 경제적 파산과 왕따로 신음하게 만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감사부서가 제 역할을 하도록 다시 설계해 주는 것도 부정과 위험을 예방하는 데 필수적이다.
셋째, 고위관료가 낙하산을 타고 부당하게 재취업하는 실태를 끊어야 한다. 공직자윤리법은 영리기업만 관리대상으로 하고 한국선급이나 해운조합 같은 곳에는 합법적으로 승인을 받아 쉽게 갈 수 있게 열어주고 있다. 낙하산들은 전문성과 경륜으로 사회에 기여하기보다 정부에 로비와 청탁 그리고 방패막이를 하며 관치(官治)를 재생산하고 부패를 확산한다. 정부를 무력화하고 정책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부를 통제하는 일차적 책임은 정치인에게 있다. 정치권력을 누리기만 하면 약탈자일 뿐이고, 소임을 찾아 헌신한다면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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