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 것은 버스에 ‘잘’ 타게 되었을 때다. 일종의 요령이 생겼다고나 할까.
처음 한국 버스에 탔을 때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일본의 버스에 비해 한국버스는 길이도 좀 길고 넓이도 넓은 편이다. 또 한국 버스는 승객이 올라탄 뒤 얼마 되지 않아 속도를 올리고 빠르게 달리는 편이다. 그래서 처음 버스에 탔을 때는 빨간 신호에 멈추거나 정류장에 멈출 때마다 몸이 앞뒤로 왔다갔다 흔들리기 일쑤였다. 서 있을 때는 뭔가 꽉 붙잡고 있지 않으면 넘어질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붙잡는데, 이 손잡이가 왠지 제대로 몸을 지탱해 주지 않다 보니 온몸이 손잡이에 휘둘려 한 바퀴씩 몸이 배배 꼬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다른 승객을 둘러보니, 이럴 수가. 몸은 흔들리지만 중심을 잘 잡는 데다 손잡이가 아닌(!) 길쭉한 난간을 붙잡고도 제대로 몸의 균형을 취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주의해야 한다. 자신이 내릴 정류장이 다가오자 승객들은 일제히 앞다퉈 문 근처에 모인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바로 문이 닫히기 때문에 우물쭈물하면 버스에서 영원히 못 내릴 수도 있다. 문이 너무 일찍 닫힐 때 승객들은 운전기사에게 외치기도 한다. “아저씨! 내려요! 문 열어 주세요.” 나 역시 문이 닫히려고 할 때 작은 목소리로 “저, 내립니다”라고 말했지만, 기사님이 못 들으셨는지 버스는 출발했다. 당황한 내 얼굴을 보고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할 수 없네요.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셔야겠어요” 하고 위로해줬다.
일본에서는 버스가 완전히 정차한 뒤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리는 경우가 많다. 버스 회사 입장에서는 승객이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서, 완전히 정차할 때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아 달라고 한다.
한편 버스에서 신기한 경험을 한 적도 있다. 여느 날처럼,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들고 있는 짐을 누가 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앞에 앉은 중년 남성이 내 짐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당황한 나는 ‘혹시 이걸 가져가려는 건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내가 무거울까 싶어 짐을 들어준다는 뜻이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버스 정류장도 아닌데 갑자기 주유소 앞에서 버스를 세워 놓고 기사님이 어디론가 가 버린 것이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탄 사람들은 별반 놀라는 기색 없이 모두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 얼마 뒤 기사님이 돌아오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다시 버스를 몰았다. 추측하건대 화장실에 다녀오신 것 같았다. 또 다른 버스를 탔을 때는, 공원 앞 화장실로 기사님이 가버리셨는데 오랫동안 나오지 않으셨다. 승객끼리는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보네”라며 기다렸고, 바쁜 승객은 버스에서 내리기도 했다. 생리 현상에 대해 한국의 승객들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것 같다.
일본에서는 2005년 4월 효고 현에서 JR 탈선사고가 일어났다. 기차 운전사가 정거장마다 정해져 있는 도착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그 몇 분을 맞추기 위해 너무 빨리 달렸다. 커브를 제대로 돌지 못하면서 탈선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JR의 시간표는 면밀하고 약간의 지연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확한 시각에, 1m의 오차도 없이 정차시켜야 한다. 만약에 늦거나 정차 위치가 어긋났을 경우, 회사가 운전자에게 심한 압력을 가한다. 단순히 비교할 문제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늦어도 되고, 급해서 화장실에도 다녀올 수 있는 한국 버스가 더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물론 시간은 정확한 것이 좋지만 지나치면 인간이 아니라 기계가 되는 일이니까.
기사님이 화장실에서 너무 늦게 나오는 바람에 나는 약속엔 늦었다. 기사님, 전날에는 컨디션 관리에 주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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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벌써 3년째에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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