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현 셰프의 비밀노트]놀라운 맛의 비밀 ‘우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03시 00분


<2>아이스크림

CJ푸드빌 제공
CJ푸드빌 제공

정동현 셰프
정동현 셰프
“I love you!” 나는 사랑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요리학교를 다니던 시절, 같은 반 친구 아멜리아가 갓 만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내 입에 넣어줬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앉아 있을 때보다 요리를 할 때 행복했다’던 그녀는 알고 보니 옥스퍼드대 출신의 인텔리였다. 그런 아멜리아가 나의 열렬한 고백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 행복해?” 그제야 알았다. ‘어제 일을 잊지 않았구나.’

전날 나는 아멜리아와 짝을 지어 실습을 했고 레시피를 잘못 읽는 바람에 함께 하던 요리를 망쳐 버렸다. 짧은 영어 때문이었다. 우리 둘은 저녁 늦게까지 남아 요리를 해야 했다. “I'm sorry.” 왈칵 눈물이 났다. 글자 하나 제대로 못 읽는 내가 한심했다. 아멜리아가 나를 안았다. 그리고 “괜찮다. 누구나 쉽게 하는 실수다. 나도 자주 그런다”고 속삭였다. 그녀는 작아진 나를 위로하려 다른 반 친구들을 제치고 나에게 가장 먼저 아이스크림을 준 것이었다.

갓 만든 아이스크림은 놀라운 기쁨이었다. 꿀처럼 달콤하고 농밀했으며 신선했다. 그전까지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한국에서는 왜 그 맛이 나지 않았을까?

우선 우유가 문제다. 한국은 아이스크림의 알파요 오메가인 우유가 맛이 없다. 영국에 가기 전까진 몰랐다. 영국에서 마신 우유는 한국의 그 맛이 아니었다. ‘이렇게 고소했나?’ 싶을 정도로 향이 진했다. 잡맛 없이 깨끗하고 신선했다. 마트에 가면 유기농 우유가 매대 절반을 차지했다. 영국은 우유에 진지한 나라였다.

한국 우유가 맛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전통적으로 소는 일을 시켰지 우유를 짜지는 않았다. 자연히 우유를 적게 마셨던지라 낙농업 발달이 더뎠다. 이게 다가 아니다. 비용을 아낀다고 우유를 종이팩에 담으니 더 맛이 없다. 우유는 다른 맛에 쉽게 오염된다. 그래서 팩우유에서는 희미하지만 분명히 비닐 냄새가 난다. 초고온순간살균(UHT·135도에서 2초 이상) 처리도 일반적이다. 이렇게 불에 지지듯 처리를 하면 특유의 태운 맛이 나 신선함이 사라진다. 우유가 이 모양이니 아이스크림이 맛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직접 만드는 곳이 흔하지 않다. 서양에서는 작은 카페일지라도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을 내놓는 게 기본인 반면 한국에서는 당당하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쓴다’느니 하는 간판을 내건다. 한정식 집에서 ‘저희는 햇반을 씁니다’라고 말하는 격이다.

아이스크림 만들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아이스크림 기계만 있으면 된다. 인터넷에서 5만 원이면 살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자주 먹는다면 몇 달 안에 본전을 뽑고도 남는다. 비싸고 좋은 기계일수록 냉각 온도가 낮아 아이스크림 입자가 곱지만 싼 것도 집에서 쓰긴 충분하다. 우유 1L에 설탕 200g을 섞고 냄비에 부어서 약한 불로 졸인다. 이때 취향에 따라 초콜릿을 녹이거나 녹차를 우려내도 된다. 양이 3분의 2로 줄면 불에서 내려 차갑게 식힌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기계에 붓고 20분 정도만 기다리면 끝이다.

언제 먹는가도 중요하다. 아이스크림은 유통기한이 없다고 하지만 오래 두면 산패가 일어나고 맛이 오염되기 쉽다. 신선한 우유처럼 아이스크림 역시 갓 만들었을 때 제일 맛있다. 저절로 ‘아아’ 하는 탄성이 나오는 맛이다.

나는 지금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면 푸른 눈의 그녀가 떠오른다. 요리를 시작한 이후 셀 수 없는 실수와 잘못이 있었고 자주 한없이 초라해지곤 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나를 너그러움으로 안아주었던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주었던 아멜리아처럼 그들은 나를 내치지 않고 감싸주었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은 각별하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릴 때면 더욱 그렇다.

: : i : :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필자(32)는 영국 고든 램지 요리학교 ‘탕테 마리’에서 유학하고 호주 멜버른 크라운 호텔등에서 요리사로 일했다.
#아이스크림#우유#유통기한#신선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