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정부도 대통령도 위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9일 21시 45분


2차대전후 최고의 신생 成功국가…그러나 非常에 무능한 ‘허당 정부’
賤民관료주의 부끄러운 줄 알라
집단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누리며 국민 위험 앞에 무슨 희생 했던가
이번에 못바꾸면 朴정부 기회없어…대통령 인사부터 실패 반복 말아야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배가 출발하기 전의 상태로, 기울어지기 전의 상태로, 침몰하기 전의 상태로, 선장·승무원들이 도망치기 전의 상태로, 해맑은 아이들이 질서를 지키다 배신당하기 전의 상태로 정말 되돌릴 수 없단 말인가. 급우를 먼저 걱정하고, 되레 선생님을 걱정하고, 멀리 부모를 걱정했던 이 고교생들의 100년 미래를 앗아간 것은 무엇이며 도대체 누구인가.

이제 대한민국은 돌아가야 한다. 재난구조 시스템이 참담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을 드러내기 전의 상태로, 관료들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관료들의 집단 이기심에 희생당하는 천민관료주의(賤民官僚主義)가 고착되기 전의 상태로, 구원(救援)의 탈을 쓴 무한 탐욕이 사고 원인을 누적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실행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재난구조 시스템도, 희생과 자제와 명예심으로 선공후사(先公後私)하는 공복의 도리도, 고객 안전과 사회 안녕을 배려하는 도덕적 경영도 애당초 불모(不毛)였다면 이제부터라도 배양해 내야 한다. 여기에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와 국민의 자존심을 걸어야 한다. 허세로 분칠한 속빈 문명국, 입으로만 안전을 외치는 불안국가로 이대로 좌절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신생 성공국가이다. 그러나 지금, 위기에 취약하고 비상(非常)에 무능한 국가사회 시스템을 세계 앞에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 대변인을 시켜 ‘국가안보실은 재난 분야의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고 했다. 국가안보실은 통일·안보·정보·국방의 컨트롤 타워라고 선을 그은 것이었다. 더 따지지 않고 김 실장의 말이 맞다고 치자. 그렇다면, 외적(外敵)의 공격이나 침입을 받은 것도 아니고 평화로운 내해에서 훤한 대낮에 500명 가까이 태운 여객선이 서서히 가라앉아도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대응밖에 못하는 정부가 국방·안보의 비상위급 상황에는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안보실은 국방 컨트롤 타워로서 북한 무인기가 청와대 상공을 휘휘 돌며 지나다닐 때 무슨 컨트롤을 어떻게 했던가.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문패 바꿔 국민안전을 우선시하는 정부인 양 과시하고, 정부3.0이라는 말을 만들어 부처 간 칸막이를 다 없앤 유능·효율정부인 양 포장했지만 수백 명 국민의 생명이 걸린 실제상황에서 어떠했던가. 국정은 혀가 아니라, 정신과 땀으로 준비하고 실행으로 관철하는 것이어야 한다. 21세기 10위권 경제강국에 탐관오리(貪官汚吏)가 득실거리고, 그 탐욕들이 얽히고설켜 국민안전을 뿌리부터 흔드는 현실은 정말 부끄럽고 슬프고 참담하다. 썩으면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어떻게 환골탈태해도, 금후의 대한민국이 진실로 ‘안전한 나라’가 되더라도 희생자들을 신원(伸寃)할 수도, 유가족들의 한(恨)을 다 풀 수도 없다. 다만 고인들도, 유족들도 야만의 세상이 이대로 방치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정부가 진실로 변화를 이뤄내려 한다면 사고의 원인, 그리고 대응 과정의 문제점을 낱낱이 다 밝혀내야 한다. 그 인과(因果)들을 숨김도, 왜곡도 없이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 사고예방 단계, 재난구조 단계 각각의 해법들은 원인과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찾아내야 한다. 진정한 국가 안전시스템 구축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가능하다. 이번에 제대로 못 바꾸고 못 고치면 박근혜 정부는 더 기회가 없을 것이다.

국민은 그 과정과 작업에 대해 냉철하게 지켜보고 기다릴 필요도 있다. ‘빨리빨리’는 ‘대충대충’으로, 또 다른 화(禍)를 부를 위험이 있다. 언론은 본말(本末)을 뒤집지 말고, 선정적 보도를 자제할 일이다. 중구난방으로 배가 산으로 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설익은 지식과 제한된 정보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혼선이 커지고 정합성 있는 시스템 구축이 어려워진다. 언론과 국민이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때 정부와 정치의 위선과 눈속임도 줄어들 것이다.

정부도 대통령도 위기다. 박 대통령은 ‘안전한 나라 만들기’의 시험대 전면에 섰다. 적재적소 인재 배치의 중요성을 성찰하고, 친소(親疎)와 은원(恩怨)을 넘어선 입현무방(立賢無方)의 인사로 ‘국민을 지켜주는 정부’의 토대를 새로 만들기 바란다. 대통령이 아무리 감싸줘도 무능은 성공할 수 없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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