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복거일]이제 도덕을 말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먹먹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시민들은 촛불 불빛으로 추모의 글귀를 썼다. 동아일보DB
먹먹한 가슴을 달래기 위해 시민들은 촛불 불빛으로 추모의 글귀를 썼다. 동아일보DB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슬픔은 힘이다. 건강하고 강력한 힘이다.

감정들은 우리가 살아 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진화했다. 슬픔은 지녀야 할 것들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슬퍼할 때 우리는 다짐하는 셈이다, 다시는 소중한 것들을 잃지 말자고.

우리는 슬픔을 통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잃음도 받아들인다. 삶은 이어지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남은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들이 이 세상에 나와서 삶을 꾸리도록 준비해야 한다.

1차 대전에서 죽은 젊은이들을 슬퍼한 영국 시인은 썼다.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 확실한 봄 말고는.”
다시는 소중한 것들 잃지 말자

온갖 위험들 속에서 불확실한 삶을 꾸려가는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내년에도 봄은 찾아오고 우리 학생들은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보고 배우러 수학여행에 나서리라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자식들이 보다 안전하게 여행하고 보다 깨끗하고 친절한 곳에서 묵으며 즐거운 추억들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사고가 났다고 느닷없이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것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너무 움츠러드는 일이다. 삶은 본질적으로 모험적이므로, 그렇게 움츠러든 태도로 진정한 삶을 꾸려갈 수 없다.

안전하고 즐거운 수학여행을 우리 자식들에게 마련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는 촘촘히 연결된 복합체이므로, 한 부분만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 수는 없다. 안전이든 깨끗함이든. 온 사회가 함께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다. 거듭된 사고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보다 안전한 사회로 바뀌지 못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 겨우 두 달 전의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는 같은 현상들이다.

이번 사고는 아주 부실한 해운회사에서 비롯했다. 항공 여행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상황에서 소유주는 투자하기는커녕 자금을 빼내갔다고 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면, 그런 ‘좀비 기업’들은 ‘창조적 파괴’ 과정을 통해서 정리되지만, 해운처럼 규제가 많은 시장에선 감독 기관들을 매수하는 방식으로 생존이 가능하다. 실제로 그 해운회사는 안전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했지만, 감독 기관들에 대한 로비엔 큰돈을 썼다.

그렇게 매수된 감독 기관들은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세월호의 증축을 허가한 일이다. 선박의 설계 도면은 기능과 효율과 안전이 조화를 이룬 창작품이다. 뒤에 배의 구조를 바꾸면, 공들여 얻은 조화가 깨어질 수밖에 없다.


왜 우리는 부실하고 썩었는가


그런 구조 변경을 허가한 사람들도 문제가 무척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적재 화물을 크게 줄인다’는 조건을 달고서 허가했다는 사실이 유창하게 말해준다. 그러나 승객들을 더 실으려고 한 층을 더 올린 해운회사가 그 조건을 지켜서 화물칸을 그냥 비워두고 운항하리라고 그들은 정말로 기대했던 것일까? 그렇잖아도 과적이 일상적인 우리 현실에서? 이 단계에서 세월호는 시한폭탄이 되었다.

배를 실제로 부리는 선장과 선원들의 자질과 행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비열했다. 그들의 비정하고 비루한 행태가 화를 걷잡을 수 없이 키웠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번 사고의 원인은 우리 사회의 비참한 풍토다. 일마다 거칠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사소한 자기 이익을 위해 양심이나 규범을 쉽게 어기고 부패하지 않은 구석이 드문 우리 풍토가 근본적 원인이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왜 우리 사회 풍토는 그리 거칠고 부실하고 썩었는가?

사회의 중심적 문제는 구성원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해서 반사회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는 일이다. 어떤 사회든 이 문제에 나름으로 대처해서 응집력을 확보해야 존속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들은 본질적으로 응집력이 약한 데서 나온 현상이다.

동물 사회는 혈연을 통해서 응집력을 확보한다. 유전자들을 공유한 개체들은 서로 도우므로, 지나치게 이기적인 행동으로 사회를 해치지 않는다. 문화가 발전해서 사회가 커진 인류의 경우, 혈연만으로 응집력을 확보할 수는 없다. 낯선 사람들이 어울리는 사회에선 협력해서 보다 큰 이익을 얻는 행태가 두드러진다. 협력적 행태가 혈연을 보완함으로써, 인류는 다른 사회적 종들보다 훨씬 번창한다.

그런 사회가 제대로 움직이려면, 서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신뢰는 도덕이 제공한다. 우리 사회는 역사적으로 높은 도덕을 함양하지 못했다. 특히, 시장이 발달하지 못해서 혈연이 지나치게 중시되었고 시민들은 경제활동을 통한 협력을 연마할 기회가 적었다.

도덕이 낮으므로, 우리 사회는 거래 비용이 높다. 자연히, 삶이 비효율적이고 질도 낮다. 횡단보도를 무시하고 달리는 자동차들과 ‘전관예우’라는 관행적 부정과 이번 사고는 서로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실은 모두 낮은 도덕이라는 흙에서 자란 초목이다.
낮은 도덕 높은 거래 비용

따라서 어처구니없는 사고들을 줄이는 길은 우리 사회를 보다 도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근본적 처방은 시장의 몫을 늘리고 정부의 몫을 줄이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액턴 경의 널리 알려진 얘기대로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역사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관리들의 힘은 절대적이었고 부패도 절대적이었다. 그런 사정은 현대에서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근년에 정부의 몫이 커지고 기업들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오히려 관리들의 힘이 늘어났고 부패도 점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이번 사고는 감독 기관들과 해운회사들이 서로 유착되어 최소한의 감독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갖가지 규제들을 만들어 감독 기관이 감독하도록 하는 방안보다는 소비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친절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언제나 낫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규제 혁파’는 더욱 힘차게 추진되어야 한다.
시장 몫 늘리고 정부 몫 줄여야

아울러, 일상생활에서 시민들이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긴요하다. 무엇보다도, 모두 법규들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법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도덕을 얘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차를 모는 사람들이 교통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은 도덕 운동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쉽게도, 근년에 우리 사회에선 도덕을 강조한 정치 지도자가 없었다. 박 대통령이 ‘규제 혁파’와 함께 시민들의 도덕심을 높이는 운동을 시작한다면, 우리 사회를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드는 데 큰 성과를 거둘 것이다.

슬픔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 시민들 모두가 느끼는 이 깨끗하고 힘찬 심적 동력을 이제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데 써야 한다. 어김없이 찾아올 내년 봄에는 우리 어린 자식들이 마음 놓고 수학여행에 오를 수 있도록.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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