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서 있는 이동도서관에서 시집 몇 권을 빌렸다. 그중 한 권이 이 시가 실린 신영배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다. 정말 시를 잘 쓰는구나! 흠뻑 빠져서 읽었다. 그의 다른 시집 ‘기억이동장치’랑 ‘물의 피아노’도 찾아 읽고 싶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시를 쓰는, 시집을 세 권이나 낸 시인을 나는 여태 이름도 몰랐다. 반성한다.
빛이 있는 곳에서 물체에는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를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갖고 대하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느덧 우리는 그림자를 과학적 현상으로만 받아들이고 관심을 거둔다. 그런데 ‘그림자의 소리를 듣는다/비다//그림자의 색깔을 본다/불이다’라니! 시인의 감각적인 묘사로 영혼이 옮겨 붙은 듯 그림자의 세계가 생생히 살아난다.
이 시의 열쇠 말은 ‘그림자’와 ‘주머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는 자기 세계를 보호하려는, 혹은 자기 존재를 보이지 않게 하고 싶은 심리를 나타낸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에게 손을 넣을 호주머니는 얼마나 큰 위안인가. 그림자의 세계에서는 주머니에 발도 넣을 수 있다. 화자는 아주 숨지는 않는다. 그림자로 숨고, 주머니의 불룩함으로 숨는다. 냄새 향기로운 그림자에서 하수구 맛을 보는 순간, 그림자가 쑥 벗겨져 사라지고 화자는 주머니에서 굴러떨어진단다. 내공 깊은, 참신하고 독특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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