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병준]진실로 국가개조를 원한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6일 03시 00분


대통령도 쉽게 손 못댈 만큼 뿌리깊고 광범위한 유착고리… 해결위한 담론은 여전히 저급
문제 구조-배경 정확히 분석… 희생 각오한 사람들에게 척결업무 수행하게 해야
그렇게 하지 않을 거면 국가개조 입에 올리지도 마라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국가는 ‘룰’, 즉 경기규칙을 만든다. 그 룰은 당연히 정정당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또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이런저런 이유로 국가는 때로 잘못된 룰을 만든다.

세월호 참사를 보자. 정부는 여객운임을 낮게 통제해 왔다. 승객 부담과 국가의 운임 보조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선사는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없었다. 헌 배로 선원들 월급 짜게 주고, 때로 정원 초과에 적재정량 초과 등의 반칙을 해야 돈을 만져볼 수 있었다.

자연히 경기 참여자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어쩌다 발을 디딘 사람, 반칙에 이력이 난 사람, 반칙하다 자빠져도 하늘이 보호해 줄 것이라 믿는 사람 등이 참여했다. 어떤 사람이 많았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국가가 이런 형편을 몰랐을 리 없다. 잘 알기에 때로는 반칙을 용인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진입규제를 해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 순간 선사들과의 유착이 형성되었다. 잘못된 룰이 유착을 만들고, 그 유착이 다시 잘못된 룰을 만드는 악순환이었다. 선사는 독점이 편했을 것이고 정부는 그 위에서 힘을 쓰는 게 재미났을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된 구조였다. 독점과 반칙을 전제로 한 ‘악의 유착’이었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더이상 슬플 수도, 더이상 분노할 수도 없다. 모두가 자괴감에 몸을 떨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유착이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활민원 창구에서부터 대형 법무법인이 나서는 크고 전문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수없이 많은 유착이 형성되어 있다.

개혁 작업을 해 본 경험으로 이야기하자. 유착의 고리는 생각 이상으로 강하다. 그 일부는 이미 정권이나 대통령의 힘으로도 쉽게 손을 댈 수 없을 정도이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이 유착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을 위한 룰을 재생산해 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의를 파괴하고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일종의 ‘숨은 정부(hidden governments)’인 셈이다.

슬프고 분한 마음에 모두들 국가개조를 하자고 한다. 잘못된 유착을 근절하고 제대로 된 룰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제발 그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답답하다. 문제가 어렵고 복잡한 데 비해 이를 위한 담론은 여전히 저급한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연안여객선 문제 하나 푸는 데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경쟁체제를 성립시키자면, 또 반칙을 하지 못하게 하자면 국고 부담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기존 선사의 상당수가 퇴출되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어떤 싸움이 벌어지겠나. 하물며 국가를 개조하는 일이다. 어떤 싸움이 일어나고 어떤 부담을 안게 될지 가늠하기도 힘이 든다.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두고 일부에서는 하기 좋은 말만 되풀이한다. 의식혁명을 해야 한다느니 관행과 문화를 혁신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들이다. 말에서 말로 끝나는 말들이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일부는 분노만 부추긴다. 모든 것이 누구누구의 잘못이라 손가락질한다. 잘못된 원인분석과 왜곡된 논리로 분노 마케팅에 올인 하는 사람도 있다. 책임 소재를 따진다는 점에서는 그래도 좋다. 하지만 그 다음은 어떻게 하나. 이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진실로 국가개조를 원한다면 문제를 제기할 때부터 그 진정성이 들어 있어야 한다. 유착이 이루어지고 잘못된 룰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배경, 그리고 그 이면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대해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정부는 그렇다. 사안이 어렵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안전문제만 해도 정부 부처 이름 하나 바꾸면 되는 정도로 쉽게 생각한 것이 패착이었다. 연안선박의 안전문제만 해도 안전행정부 차원에서는 백년이 가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였다. 당연히 그보다 높은 차원의 강도 높은 작업이 있어야 했다.

또다시 그래서는 안 된다. 제대로 하자면 문제의 구조부터 제대로 분석해야 한다. 추진체계 또한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 그리고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 다음 세대에나 평가를 받겠다는 사람들로 일을 추진하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것이면 국가개조든 개혁이든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마라. 실패의 역사만 되풀이하게 될 뿐이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
#국가개조#세월호 참사#적재정량 초과#유착#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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