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승건]그들만의 ‘단독 기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7일 03시 00분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현장에서 카메라가 깨졌다. 유족에게 멱살을 잡힌 기자도 있다.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현실도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들은 왜 분노한 유가족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을까. 왜 인터뷰를 하겠다고 남의 집 담을 넘어 무단 침입했을까. 거짓말을 일삼아 온 젊은 여성의 검증되지 않은 얘기를 왜 방송에 내보냈을까.

포털사이트의 뉴스를 보다 보면 ‘단독’이라는 단어를 앞에 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다. 그중에는 오랜 기간 발로 뛰며 취재한 ‘진짜 단독’ 기사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 훨씬 많다. 연예인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을 단독이랍시고 올린 기사부터 부지기수다. 소위 ‘시간 차 단독’으로 불리는 기사도 있다. 출입처에서 받은 보도 자료를 가장 먼저 포털사이트에 단독이라고 포장해 올리는 것이다.

스포츠에서도 그런 기사들이 판을 친다. 구단 단장이 바뀌었다는 것도 ‘단독’을 붙여 올린다. 아무도 받아쓰지 않는 ‘단독 기사’가 많은 이유는 자명하다. 그래야 관심을 끌고 클릭 수 하나라도 늘릴 수 있어서다. SNS의 글을 옮기는 건 그래도 봐줄 만하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기자들은 선수촌을 허락 없이 출입할 수 없다. 선수들의 훈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기자단 스스로 정한 합의 사항이다. 경기를 모두 마친 선수가 있으면 그때는 대한체육회 등과 협의해 취재 일정을 잡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일이다. 대회가 중반도 지나지 않았는데 한 매체에 금메달리스트의 ‘단독 인터뷰’가 실렸다. 배려하자고 만든 합의를 깨는 기사였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합의를 지켜 왔던 언론사들의 무한 취재 경쟁이 시작된다. 선수와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이어진다.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언론사의 기자가 잘 아는 지도자를 통해 현지 시간 오후 10시에 선수 3명을 불러냈다. 메달을 들고 나오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선수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그 기자를 제외한 다수의 기자들 앞에 서야 했다. 선수 3명 중 2명은 아직 경기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사실 또는 진실과는 무관하게 일단 관심만 끌면 된다는 일부 언론의 욕심은 취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취재원에 대한 배려가 있을 리 없다. 그들에게 다른 매체는 모두 적이다. 도를 넘은 취재 경쟁을 벌이는 그들에게 언론인의 사명이나 정도를 요구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다. 인터넷에 의존하는 지금의 언론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들만의 단독 기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승건 스포츠부 차장 why@donga.com
#세월호#단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