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공습으로 침몰한 미 해군 애리조나 호의 승무원들을 기리는 기념관(USS Arizona Memorial)이 있다. 1941년 12월 7일 아침의 도발로 이 배의 승무원 1511명 중 1177명이 숨졌다. 당시 피습으로 진주만에서 사망한 미군과 민간인 2403명의 절반가량이다.
해상 기념관은 침몰한 배 위에 1962년 세워졌다. 애리조나 호의 가운데를 일자로 가로지르는 형태다. 그 아래로 가라앉은 애리조나 호가 내려다보인다. 사망자 유해 중 신원이 분명히 확인된 것은 107구뿐이었다. 나머지 1070명은 아예 시신조차 찾지 못했거나, 시신의 일부를 찾았지만 훼손이 심해 결국 신원 확인을 못하고 무명용사 묘에 매장했거나, 인양할 수 있었지만 신원 확인이 어려운 상태여서 그냥 배 안에 남겨 둔 경우로 나뉜다. 피습 당시 폭발이 워낙 컸고 화재가 이틀 반 동안 계속돼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즉사한 뒤 사실상 그대로 화장(火葬)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땐 DNA 검사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하와이의 국제 세미나에 참석했다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 참변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비극을 대하는 문화의 차이를 크게 느낀 적이 있다. 한국적인 사고로는 얕은 바다에 침몰한 배를 왜 인양하지 않았는지, 유족들이 항의하진 않았는지 납득하기 어려웠다. 과학의 힘으로 뒤늦게라도 일부 유해나마 신원을 파악해 유족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그게 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6·25전쟁 때 북한에서 숨진 미군 유해를 몇 십 년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고 발굴해 본국으로 옮기는 나라가 아닌가.
그때 세미나에 참석했던 연로한 미국인이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내 형도 저 바다 아래에 있다”고. 그는 그러면서 기념관 한쪽 면을 가득 채운 희생자 명단에서 형의 이름이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일행들이 모두 숙연해졌다. 평생 아픔 속에서 살았을 그에게 뭐라 위로해야 할지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 기념관은 비극이 일어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후대가 희생자들을 잊지 않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하와이의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미국엔 전쟁과 재난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이런 시설이 많다.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결코 빈말로 그치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전불감증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우린 왜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방화,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등의 참사를 그리도 쉽게 잊어버린 것일까.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쩌면 전쟁과 환란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온 역사에서 배태된 집단망각증일지도 모른다. 고통을 기억하면 더 힘이 들 테니까.
그러나 대형 참사가 발생해도 그때뿐이고 뼈아픈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세상이 나아질 리 없다. 누구를 탓하고 분노하는 것만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원인과 책임을 철저히 따지고 확실한 재발방지 대책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공동체의 비극을 ‘내 일’처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막연히 ‘우리 일’이라고 하면 실은 ‘남의 일’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인은 머리가 좋다는 얘기를 듣는다. 암기교육을 중시해 기억력도 뛰어날 것이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메모리도 용량이 큰 걸 선호한다. 하지만 정작 반드시 기억해야 할 비극에 관해선 두뇌의 메모리 용량도, 저장 기간도 유난히 짧다. 그런 일엔 유독 ‘삭제’ 기능만 발달한 한국인들이 정말 우수한 걸까. 우리 사회의 부실한 집단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하는 게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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