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삼십 년 가까이 근무한 그의 아버지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한 것은 재작년 구정 무렵의 일이었다. 수영 교실이다, 문화센터 노래 교실이다, 서울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던 그의 어머니는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끝끝내 아버지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황혼 이혼을 할 수도 없고, 어쩌냐. 혼자선 라면도 못 끓여 먹는 위인인데….”
그의 아버지는 아파트를 정리해 경기도 가평에 단층 슬래브 농가 주택과 오백여 평 되는 밭을 사들였다. 그곳은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에서 홀로 자취를 한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귀농이자 귀향인 셈이었다.
사 년 전, 결혼을 해 이제 세 살짜리 아이를 둔 그는, 아버지 어머니가 가평으로 이사 간 그 다음 주 처음 그곳을 찾아가 보았다. 가평까지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는 ‘나는 뭐 좋기만 하구먼. 이렇게 가끔 바람 쐴 수도 있고’라고 말했지만, 그는 기분이 영 이상했다. 마치 아버지가 영영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기분이었다.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언제나 칼같이 날이 선 양복바지와 호주머니에 단정하게 접힌 손수건, 그리고 한 손에 모나미 볼펜을 든 채 골몰히 예결산 자료를 보고 있던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어떤 시간 또한 순식간에 휙 지나가버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혹시 아버지가 무슨 병을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그런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평 집에 도착해 밭에 쭈그려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 그는 웬일인지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는데, 그건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는 서류 뭉치와 모나미 볼펜,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다.
“이게 내가 인터넷에서 뽑은 토마토 경작법이거든. 이거대로만 하면 아무 문제 없단다.”
아아, 아버지는 농사짓는 것도 서류로 배우시는구나. 뭐, 여전하시네. 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긴, 아버지는 농사라곤 제대로 지어본 적 없는 분이니까. 그는 아버지가 토마토 옆에 삐뚤빼뚤 박아 놓은 지지대를 보며 슬쩍 고개 돌려 웃었다.
“두고 봐라. 우리 손주, 올여름엔 토마토 물리게 먹게 해줄 테니.”
그의 아버지는 서류를 넘겨 본 후, 다시 줄자로 지지대의 높이를 꼼꼼하게 재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첫 택배를 받은 것은 그해 칠월 중순의 일이었다. 모두 세 박스가 배달되어 왔는데, 두 상자엔 토마토가, 나머지 하나엔 상추가 들어 있었다.
“어머, 이 토마토 색깔 좀 봐. 이런 게 진짜라니까.”
그의 아내는 토마토를 보면서 손뼉까지 쳐대며 좋아했다. 그는 택배 상자를 슬쩍 들여다보면서 어쩐지 조금 우쭐한 기분이 되어 ‘우리만 먹기엔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처형네도 좀 나눠주지, 그래’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는 바로 처형에게 전화를 걸어 ‘글쎄, 그렇다니까. 완전 유기농이야’ 하면서 콧잔등을 찡긋거렸다. 일산에 사는 처형은 그날 밤 바로 퇴근길에 들러 토마토 한 박스와 검은 비닐봉지 가득 상추를 담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것은 그 이튿날의 일이었다.
“혹시 네 아버지가 택배 보냈더냐?”
어머니는 마치 무언가 은밀한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처럼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네. 뭘 그렇게 많이 보내셨어요?”
그가 대답하자,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쉰 후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도…. 그거 말이다, 어미한테 빡빡 씻어서 먹으라고 해라. 거, 농약을 얼마나 세게 쳤는지 모른다….”
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자, 어머니가 덧붙였다.
“서류 보고 농사짓다가, 서류대로 안 되니까 농약을 냅다 쳐대는데…. 에휴 참, 남부끄러워서.”
그는 조용히 통화를 마친 후, 그 얘기를 아내에게, 처형에게 해줘야 할까 말까 한참을 궁리하고 앉아 있었다.
이듬해, 그는 아버지로부터 다시 옥수수 세 박스를 택배로 받았다. 이걸 또 어쩌나, 걱정하고 있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바로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아비야. 그거 먹지 마라. 그거 죄다 사료용이란다. 사료용하고 식용도 구분 못하고 냅다 심기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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