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배극인]안내원 버스, 거북이 택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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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도쿄 특파원
배극인 도쿄 특파원
1993년 부산 구포 열차 전복,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수련원 화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2014년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그리고 세월호….

최근 20여 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굵직굵직한 참사들을 열거하다 보면 참담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매번 철저한 반성과 다짐을 되풀이했지만 ‘작심삼일’이었다. 정부뿐만이 아니다. 몇 달만 지나면 어느새 ‘안전’은 뒷전이고 ‘대충대충 싸고 빠른’ 것만 추구해온 국민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온 국민이 자괴감에 빠져 자책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 한국을 다녀온 한 재일교포는 “교포라서 좋겠어요. 한국에서 안 살아도 되니”라는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한다.

참사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뭘까. 외국에서 한국을 보면 ‘안전 대책’은 있지만 ‘안전 문화’는 희박하다는 평가가 많다. 안전 문화는 안전을 최우선하는 사회 분위기와 풍토다. 안전 문화의 핵심은 당연히 타인에 대한, 국민에 대한 존중이다.

일본의 예를 들자면 특히 생활 주변의 안전 문화는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처음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택시 뒷좌석 문에 깜짝 놀랐다는 말을 많이 한다. 손님이 타고 내릴 때 택시기사가 후시경으로 안전을 확인한 뒤 자동 장치로 문을 열고 닫기 때문이다. 오토바이나 자전거와 부딪히는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다. 한국식대로 손으로 직접 문을 열면 반대로 택시기사가 깜짝 놀란다.

시내버스를 타면 복장이 터진다. 승객이 모두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뒤 “이제 출발합니다. 흔들림이 있을 수 있으니 손잡이를 꽉 잡아 주세요”라고 안내방송을 한 뒤 전후좌우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키며 입으로 ‘요시(よし·문제없음), 요시, 요시’ 하며 확인한다. 버스가 정거장에 서면 다시 안내방송이 시작된다. 버스가 정차하기 전에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는 승객도 없다. 최근에는 안내원을 배치한 버스와 거북이 택시까지 등장했다. 거북이 택시는 급출발 급정차를 하지 않고 천천히 달리는 택시다.

대형 트럭과 버스에서는 좌우회전 깜빡이를 켤 때마다 “좌(우)회전 합니다. 주의해 주세요”라는 기계음이 외부로 흘러나온다. 행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이다. 아이들 통학 시간인 아침마다 동네 주택가를 도는 청소차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을 가면 좌석을 안내하는 종업원이 계단이 있는 곳에서 “높낮이 차이가 있으니 주의하세요”라고 반드시 말로 하고 손으로도 가리킨다. 도로 가운데 차로에서 공사가 벌어지면 횡단보도 신호기에 파란불이 들어오는데도 양쪽에 2명씩 배치된 안전원이 신호봉과 깃발을 들고 행인들을 안내한다.

택시든, 버스든, 지하철이든 대중교통수단 종사자가 모두 제복을 입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제복은 신뢰감을 주는 동시에 종사자의 자긍심을 높이고 프로 정신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국가 위기관리체제 구축 등 정부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작심삼일 우려가 또 나온다. 이 기회에 생활 곳곳에 안전 문화를 심는 노력을 병행하면 어떨까. 물론 비용이 든다. 하지만 참사가 초래할 사회적 상실에 견주면 이는 비용이 아니라 보험이다. 이제 ‘안전에 공짜는 없다’는 각오도 해야 한다.

배극인 도쿄 특파원 bae2150@donga.com
#세월호#안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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