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은 제33회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한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더욱 그렇다. 세월호 참사 때문이다. 어른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내 탓이오'를 외치는 마당에 선생님들의 처지는 더욱 힘들다.
그런 사정은 1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회장 안양옥)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 조사는 올 스승의 날을 기념해 8일부터 13일까지 전국의 유치원, 초중고와 대학의 교사 및 교수, 교육전문직 3243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조사한 결과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82).
세월호 참사에 교육종사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지, 수학여행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의견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걸 수치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조사는 교총이, 교직원만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조사대상자도 3000명이 넘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교육현안 여론조사로는 주목할 만하다. 질문항목이 30개나 되지만 그중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자료에는 유치원과 초중고, 대학별 비율도 들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전체 비율만 소개한다). 1. 세월호 참사 이후 수업 전후 선생님 본인이나 주위 선생님 중에서 불안증, 우울증, 가슴 답답함 등의 신체적인 증세를 보인 선생님이 있습니까?(이하 %) ①있다 47.4 ②없다 35.2 ③모르겠다 17.5
2. 세월호 참사 이후 수업 전후 선생님 학교나 학급에서 불안증, 우울증, 가슴 답답함 등의 신체적인 증세를 보인 학생이 있습니까? ①있다 17.0 ②없다 56.1 ③모르겠다 27.0 3. 세월호 참사 이후 수학여행 존폐 논란에 대해 선생님은 가장 합리적인 방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수학여행 완전폐지 46.5 ②현행 유지 21.2 ③학급 및 소규모 단위로 변경 28.2 ④모르겠다 4.1 4. 세월호 참사 이후 선생님 학교의 소풍, 체육대회 및 창의적 체험활동 시행여부는…. ①전면 연기 또는 취소 71.4 ②일부 시행 23.3 ③예정대로 시행 5.3
세월호 참사에 대해 학생들보다는 교직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아무래도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책임감이나 자괴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일부에서는 수학여행 폐지를 반대하고 있지만 막상 일선 교직원 중 47%나 되는 다수가 완전 폐지를 선호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평상시 안전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5. 선생님 학교에서는 최근 1~2년간 이론교육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화재 등 재난 대피훈련과 관련된 학생안전교육을 실제로 한 적이 있습니까? ①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적이 있다 76.8 ②학년 또는 일부 학급을 대상으로 실시한 적이 있다 12.1 ③없다 9.3 ④모르겠다 1.9
6. 선생님께서는 최근 1~2년 이내에 학생안전교육 또는 재난대비 관련 연수나 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①있다 60.0 ②없다 40.0 7. 선생님께서 최근 1~2년 이내에 학생안전교육 또는 재난대비 관련 연수나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면 방법은 어떤 내용입니까? ①매뉴얼 및 강의자료 중심의 이론 교육 44.8 ②체험형 교육 5.6 ③이론교육과 체험형 교육 병행 17.1 ④받은 적이 없다 32.6
이 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나마 학생들은 안전 교육을 받은 적이 77%쯤 되지만, 선생님들 중 40%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학생들에게는 훈련을 강요하면서 교사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게 된다. 교사가 받은 교육 역시 책상머리 이론교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도 문제다. 이래서야 불시에 사고가 일어나도 선생님들은 별 도움이 안 될 게 분명하다. 교직원의 각성과 제대로 된 훈련이 필요한 대목이다.
8. 안전사고 및 재난에 대한 학생들의 대응 및 대처능력을 실질적으로 길러주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수업시간 확보 9.8 ②반복훈련형 체험안전교육 주기적, 의무적 실시 72.6 ③정부 차원의 체계적 안전 매뉴얼 제작 및 보급 12.4 ④예비교사 및 교사의 안전교육 연수 강화 3.7 ⑤기타 1.4
재난에 대비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역시 '반복해서 몸으로 익히는' 것이고, 교직원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차후에 프로그램을 짜는데 반드시 반영해야 할 조사결과다.
스승의 날과 관련된 질문도 관심을 끈다.
9.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에 제자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칭찬 스티커는 무엇입니까? ①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스승)입니다 14.6 ②선생님이 다음에도 꼭 담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0 ③선생님, 존경합니다! 13.7 ④선생님, 사랑합니다! 10.8 ⑤선생님이 계셔서 힘이 나고 행복해요! 29.4 ⑥선생님이 자랑스럽습니다! 9.1 ⑦기타 2.4 10. 선생님께서 '스승의 날'에 제자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칭찬 스티커는 무엇입니까? ①너를 만난 것은 행운이야! 19.1 ②널 믿는다! 14.0 ③넌 최고야! 6.9 ④좋은(착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12.2 ⑤사랑한다! 14.7 ⑥넌 잘 할 수 있어! 33.1
듣고 싶은 말과 해주고 싶은 말에 순위야 있지만, 순위가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제자와 스승이 서로 신뢰하고 흉허물 없이 소통하는 교육현장이라면, 어떤 말도 용기와 격려가 될 것이다.
한국교총은 14일 오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학생 안전망 구축 캠페인 협약 및 교육감 정책선거 촉구 교육·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교총은 이 협약에 273개 교육·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학생안전 캠페인 협약에서는 '빨리빨리, 대충대충 문화'를 청산하고 기본으로 돌아갈 것과 주지교육보다 인성교육 강화, 이론중심이 아닌 반복훈련형 안전교육 실시, 수학여행과 자유학기제 등 학교밖 교육활동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 학생안전교육 예산 최우선 책정 등 8개항을 촉구했다. 제자를 구하려다 숨진 단원고 교사들과 구조는 됐지만 책임감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단원고 교감을 의사자로 추서해 달라는 요청이 관심을 끌었다.
교육감 정책선거 촉구와 관련해서는 시도교육감 후보자들이 학생안전에 대한 공약을 제시해 철저히 검증을 받을 것과 무상급식 등 무상포퓰리즘 정책을 포기하고, 시도의회 및 시군구 의회 비례대표에 교육전문가를 많이 추천해달라고 요구했다.
교총의 요구는 근거도 있고,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6·4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이기고 지는 것이 전부인 정치권은 교총의 요구를 차분히 들어줄 귀와 따뜻한 가슴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교육감 선거도 이미 진영논리에 매몰돼 비교육적 선거로 변질된 지 오래고, 교육의원 일몰제로 인해 이번 선거가 끝나면 광역 시도의회와 기초 시군구 의회에 교육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상황도 예상된다. 교육계로서는 이래저래 답답한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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