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첫 스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5일 03시 00분


60대 중반인 분이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분 어머니는 시골에 사시는 착실한 기독교 신자였지만 살아생전에 한 번도 자식들에게 ‘교회에 나가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와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큰형수가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

“이제부터 어머니를 따라서 교회에 나가야겠어요.”

그 말이 신호가 되어 육남매가 모두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면서 “우리 어머니 참 대단하시죠? 생전에 전도 한 번 한 적 없으셨는데 결국 우리 형제를 모두 교회에 나가게 만드셨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머니의 삶 자체가 어떤 전도의 말씀보다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내용의 8할은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었다는 이정록 시인의 시집 ‘어머니 학교’를 읽으면 우리의 어머니들은 학교도 안 다니셨으면서 어떻게 그러한 삶의 지혜를 터득하실 수가 있었을까 놀랍다.

가로등 밑 들깨는/올해도 쭉정이란다./쉴 틈이 없었던 거지./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지나고 봐라. 사람도/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어떤 세상이 맨날/보름달만 있겄냐?/몸만 성하면 쓴다.(이정록의 ‘그믐달’)

세상살이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자식에게 이보다 더 현명하고 따뜻한 다독거림이 있을까. 24시간 항상 밝은 데에서 자라는 들깨는 쉴 틈이 없어 쭉정이가 되듯이 사람도 밤낮 잘나가기만 하면 속이 비기 쉽다. 우쭐해져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둠은 지나가기 마련이니 몸만 성하면 쓴다는 어머니의 말씀에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우리 세대는 어머니의 삶을 보고 배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 무엇인가 배우러 다닌다. 엄마는 자녀에게 첫 스승이고 가정은 자녀에게 첫 학교인데, 아이들은 집에서 엄마랑 보낼 시간 없이 밖으로만 나돈다. 그러니 일류 명문대학을 나오고 해외 유학을 다녀와도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을 익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리 훌륭한 스펙을 쌓아도 가정교육이 부실하면 기초공사가 빈약한 건물과 한가지여서 외부의 작은 충격에도 쉽게 인격이 무너지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 스승의 날에 학교 선생님에 앞서 어머니의 가정교육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다. 평생 가는 세 살 버릇은 어머니에게 달려 있다.

윤세영 수필가
#어머니#스승#자녀#가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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