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우리는 지금 유럽으로 간다) 여행’이란 말이 있다. 기자와 같은 ‘응답하라 1994’ 세대, 즉 1990년대 초중반 학번들이 여름방학에 서유럽을 여행할 때 지침서 역할을 했던 책에서 유래한 말이다. 우간다 여행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중국인? 일본인?”이었다. 대부분 한국의 위치를 몰랐고 알아도 “남과 북 중 어디서 왔냐”가 고작이었다. 태극기만 봐도 눈물이 핑 돈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지금은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 기업의 간판이 보인다. 종종 현지인으로부터 간단한 한국 인사말을 듣고 유명 관광지에선 한국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한국인과 마주친다. 편리하고 쾌적한 인프라 등 여러 면에서 한국이 다른 나라의 동경을 받는 반열에 올랐음을 시시각각 느낀다.
최근 터키 기레순대가 주최한 ‘세계 양성평등 심포지엄’에 다녀왔다. 터키 북동부의 기레순은 이스탄불에서 약 1000km 떨어진 인구 9만 명의 소도시. 한국에서 가려면 편도로 약 20시간이 걸리는 이곳에서 실감한 한국의 위상과 한류 바람은 기대 이상이었다.
여드름이 송송 맺힌 10대 후반 대학생들은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기자 주변에 몰려들었다. 어색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하며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이민호, 슈퍼주니어 등 한국 배우와 가수 이름을 줄줄이 읊고 카카오톡을 이용해 한국 친구와 나눈 대화를 보여줄 땐 절로 ‘엄마 미소’가 번졌다. 한 여대생이 ‘I love South Korean’이란 문구가 새겨진 조각품을 선물로 주며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한다”고 했을 땐 눈물이 났다.
세계 20여 개국에서 모인 50여 명의 교수 공무원 언론인이 참석한 심포지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자 옆에는 1994년 대학살 때 가족을 잃은 르완다 출신 미국 기자, 유고 내전 때 지인을 잃은 보스니아 교수, 20세에 결혼해 49세에 벌써 4명의 손자손녀를 본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앉았다. 세 사람의 개인사만 요약해도 책 한 권을 쓸 정도였다.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는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절실히 느꼈다.
요즘 ‘한국이 너무 싫다. 이민 가고 싶다’는 글을 종종 본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적폐(積弊)와 부조리는 심각한 수준이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반성과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나친 자학과 비하, 편 가르기가 있어선 곤란하다.
1940년대 아르헨티나는 세계 4위 경제대국이었고 1960년대 필리핀은 우리에게 장충체육관을 지어줄 정도로 부국(富國)이었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금 우리를 짓누르는 죄책감 좌절 분노를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소모적 논쟁과 정쟁에만 휩싸인다면 지난 50년간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그렇게 날려버리기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너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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