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는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보는 중일 테다. 주사위는 여섯 면으로 이루어졌으니 모서리가 열두 개, 각각의 면에는 한 개에서 여섯 개까지 점이 찍혀 있다. 던져 올린 주사위가 떨어진 뒤 윗면에 보이는 숫자의 크기로 승패를 가르는 게 주사위놀이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 점칠 수 없고, 원하는 숫자가 나오게 할 묘수도 없다. 그저 우연에 맡길 뿐이다. 주사위라는 작은 육면체에서 우연의 무변세계를 보며 화자는 ‘주사위의 내부에는/반듯한 모서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감탄한다.
우리는 이미 던져진 주사위일까. 거기서 거기인 몇 개 안 되는 숫자로 운명이 결정되는데, ‘모서리는//모서리는//함부로 망가지는 법이 없지’. 복불복(福不福)으로 저마다 담겨진 운명의 그릇대로 살 수밖에 없을까. 곡절 많은 삶을 사는 기구한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을 주사위놀이하듯 한 신에게 따지고 싶을 테다. 아,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주사위 한 번 던진 것으로 결판 짓다니. 삼세판으로 합시다!
‘세상의 주사위들이 한꺼번에 던져지면/진짜 복소수가 나올지’ 모른다. 복소수는 실수와 허수를 아우른다. 허수라는 알지 못할 체계에 실수라는 인간의 의지가 미치는 복소수! 신해욱은 관념을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보는 듯 갖고 노는 시인이다. 마지막 두 연의 어조를 보라. 얼마나 살가운지! ‘여기’는 주사위의 내부, 복소수의 세계며 신해욱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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