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동정민]“나라와 결혼했다” vs “엄마의 맘 모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9일 03시 00분


동정민 정치부 기자
동정민 정치부 기자
2012년 초 대통령선거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참모들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선거 슬로건으로 쓸지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대선 막판에 그 슬로건을 선택하기는 했지만 박 대통령은 여성 대통령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우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여성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전 국민을 아우르는 국가 지도자로서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선거 전략상으로도 여성 후보가 여성 유권자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세월호 참사 이후 30, 40대 여성들의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했다. 박 대통령에게 실망한 여성들이 사석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애를 안 낳아서 그런지 아이를 잃은 슬픔을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는 거라고 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안산 합동분향소에 잠시만 머무르다 갔고, 16일 이전까지는 유족들과 만나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른다는 얘기다.

최고 권력자, 대통령 딸로 10대와 20대를 보낸 18년, 청와대를 떠난 뒤에도 결혼도 경제활동도 하지 않은 은둔생활, 그 이후 정치활동까지 그는 평범한 국민과는 분명히 다른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런 대통령의 인생이 결코 약점만은 아니었다. 보수층에서는 오히려 힘의 원천이 되어 왔다. 그동안 보수 정치인들은 능력은 있어도 도덕적 흠이 많다는 점이 늘 골칫거리였다. 도덕적 흠은 대부분 위장전입 병역비리와 같은 자식 문제, 부동산 투기나 탈세와 같은 재산 문제였다. 돈과 자식에서 자유로운 박 대통령은 그런 흠을 찾기가 어려운 정치인이다.

지지자들은 “애를 안 낳아서 엄마의 마음을 모른다”는 지적도 반박한다. 박 대통령은 나라와 결혼해 사심이 없다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흉탄에 잃은 아픔으로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정부가 무능하고 참모들이 제대로 보필을 못해서 그렇지 대통령도 참으로 힘들어 하고 있으며 국가를 새로 바꿔놓을 거라고.

지금까지는 나라와 결혼한 대통령의 진정성을 주장하는 지지자들이 애를 안 낳아봐서 공감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자들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사고 발생 이후 한 달 동안 박 대통령의 행보가 감동을 주기에는 미흡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오늘 대국민담화를 한다. 대통령 스스로가 오래전부터 예고해 국민 모두의 기대치는 한껏 높아져 있다. 세월호 참사로 숨죽이는 여야 정치권도 담화 발표가 임박한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박 대통령은 평소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대통령은 이번 담화에서 나라와 결혼한 대통령의 면모를 극대화해야 한다. 사과 역시 ‘참사로 잃은 아이 모두가 내 자식’이라는 공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국민이 기대하는 건 국가개조를 위한 화려한 방안보다 어머니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
#박근혜#여성대통령#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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