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유병언 왕국의 ‘거룩한 협잡’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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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윤리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찾아보기 어려운 유병언 일가
사회병리 치유는커녕 사회에 해악 끼치는 종교도
협잡 주도한 일파와 피해자 신도는 분류해야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은 아무런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보다 대체로 평균수명도 길고 건강하다. 이것은 통계적인 연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우선 예수 그리스도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다 보면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게 되고 술 담배 마약 등 각종 ‘중독성 물질’을 멀리하는 절제된 생활을 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파에 부대끼면 스트레스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기 쉽다. 그러나 신앙인은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보다 쉽게 마음의 평안에 이를 수 있다. 신앙의 중심에 있는 신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그 신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나약한 어린이를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존재를 마음 한구석에 모시게 되는 것이다.

흔히 기복(祈福)신앙을 비판하지만 종교를 통해 나와 내 가족의 평안을 간구(懇求)하는 행위는 심리적 치유와 같다. 이마누엘 칸트는 회의적 신앙만이 참다운 믿음이라고 했지만 모든 사람이 칸트 수준에서 종교를 이해할 수는 없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저서 ‘종교란 무엇인가’에서 “교회의 친교적 봉사적 심지어 기복적 기능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교회가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린이에게 행복감을 주는 산타클로스의 실제 존재를 이성적으로 따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된 종교를 잘 믿어야 한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몸에 폭탄 띠를 두르고 내 한 몸 갈가리 찢겨서라도 이슬람의 원수를 죽이면 낙원에 가서 아름다운 여인들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식의 신앙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고 지구의 평화를 해친다.

35년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건국한 지 2년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 3년 동안 무수한 사람이 죽고 집과 재산이 불탔다. 죽음 가난 질병 기아의 고통 속에서 사람들은 절과 교회를 찾았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세계에서 유례가 드물게 빠르게 전파된 것은 환란을 겪는 민중의 안식처로서 순기능을 했고, 우리보다 앞선 서양문물을 갖고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의 발흥 속에서 신자들의 재산을 가로채고 인권을 유린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도 기승을 부렸다.

1987년 오대양 공장 식당의 천장에서 32명이 집단 변사한 사건이 터졌다. 구원파의 열성 신도들이었다. 사건의 주역인 박순자 씨는 구원파의 대전지역 책임자였다. 함께 죽거나 살해당한 사람들은 박 씨에게 헌금을 했거나 돈을 빌려준 신도들이었다. 박 씨가 모금한 돈의 일부를 구원파 본부의 유병언 씨에게 전달했음이 검찰 수사에서 전표 추적을 통해 증명됐다.

박순자의 오대양에서는 신도들에게 돌아가며 회개(자아비판)를 시키고 몰매를 때렸다. 이러다 죽으면 암매장을 했다. 1991년 신도 3명을 죽여 암매장한 오대양 직원 6명이 집단으로 충남도경에 자수하면서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재조명을 받았다. 이때 유 씨를 사기죄로 기소해 징역 4년을 받게 한 심재륜 변호사(당시 대전지검 차장)는 “유 씨의 교회사업에 돈을 바치면 지구에 종말이 왔을 때 공중으로 들림(휴거)을 받는다는 것이 교리의 핵심”이라고 회고했다. 오대양 사건을 보면 배타적인 구원관(觀)을 가진 종교가 사회에 해독을 끼치고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검찰은 신도들이 유병언이 교회와 회사의 돈을 빼돌린 진실을 알면 그를 비호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 씨와 신도들을 분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피해자로 분류해야 할 신도들이 많지만 쉽게 빠져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죄업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심판의 날이 닥쳤을 때 특정 종파의 신도만을 구원해 준다는 교리를 가진 다수의 종교집단이 존재했다. 종말론 종파의 신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기 때문에 그 신앙이 꺾이는 데 따르는 유무형의 손실을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어려운 국면을 신앙을 시험하는 시련이라고 자위하거나,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 모여 그들의 신앙을 건져줄 논리나 증거를 개발한다는 것이 다수의 종말론 종교에서 관찰된 현상이다.

세월호를 소유한 청해진해운에서는 종교 윤리는 물론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신도들은 검찰 수사를 방해하면서 ‘종교 탄압’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종교를 빙자한 ‘거룩한 협잡’이 얼마나 심각한 사회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를 돌아보는 요즘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유병언#구원파#오대양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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