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260>강천산에 갈라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1일 03시 00분


강천산에 갈라네
―김용택(1948∼ )

유월이 오면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
때동나무 하얀 꽃들이
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히면
환한 때동나무 아래 나는 들라네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가면
산딸나무 꽃도 있다네
아, 푸르른 잎사귀들이여
그 푸르른 잎사귀 위에
층층이 별처럼 얹혀
세상에 귀를 기울인 꽃잎들이여
강천산에 진달래꽃 때문에 봄이 옳더니
강천산에 산딸나무 산딸꽃 때문에
강천산 유월이 옳다네
바위 사이를 돌아
흰 자갈 위로 흐르는 물위에
하얀 꽃잎처럼 떠서
나도 이 세상에 귀를 열 수 있다면
눈을 뜰 수 있다면
이 세상 짐을 다 짊어지고
나 혼자라도 나는 강천산에 들라네
이 세상이 다 그르더라도
이 세상이 다 옳은 강천산
때동나무 꽃 아래 가만가만 들어서서
도랑물 건너 산딸나무 꽃을 볼라네
꽃잎이 가만가만 물위에 떨어져서 세상으로 제 얼굴을 찾아가는 강천산에
나는 들라네


김용택은 고향인 섬진강 강변마을에서 작은 초등학교의 선생님으로 살며 그 산천과 사람들을 순박하고 아름답고 싱싱한 시어로 길어냈다. 삶과 시가 어우러진, 이 행복한 시인에게도 그늘이 있었던가. 답답하기도 했던가. ‘유월이 오면/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라 한다. ‘하얀 꽃들이/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힌 때동나무 아래서 건너다보이는 산딸나무도 하얗게 꽃이 만발하고, 그 꽃잎들 하염없이 ‘바위 사이를 돌아/흰 자갈 위로 흐르는 물 위에’ 떨어질 때란다. 유월이 오면, ‘아, 푸르른 잎사귀들이며/그 푸르른 잎사귀 위에/층층이 별처럼 얹혀’ 하얗게 마음을 밝히는 때동나무 꽃이여, 산딸나무 꽃이여! 아래에 흰 자갈 구르고 위로 흰 꽃잎 흘러가는, 맑은 개울이여! 하얗게, 하얗게 부서지는 유월이여!

세상의 그름에 마음 다친 이들에게 시인은 함께 가잔다. 옳고 옳은 유월 강천산, 맑고 깨끗한 거기서 귀를 씻고 눈을 씻잔다. ‘옳다’는 건 저절로 우러나는 호감이며 사랑일 테다. ‘그름’은 무겁고 칙칙한 감정,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유월이 오면, 어디라도 산딸나무 꽃 핀 개울에 가서 꽃잎처럼 마음을 띄우고 흘러가보고 싶다. 그러면 ‘가만가만’, 제 마음이 돌아올까….

황인숙 시인
#강천산에갈라네#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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