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를 뒤덮은 말이다. 규정보다 많은 짐을 실은 해운사,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관피아(관료+마피아)’ 조직, 승객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 초동 대처에 실패한 해경, 허둥댄 정부…. 원망의 화살은 곳곳을 향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도 이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두의 나태함이 비극의 원인”이라며 자책했다.
“왜 막지 못했나?”
이 말은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동아일보가 기획한 ‘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시리즈가 보도된 직후였다. 기사를 본 어느 대기업 임직원들이 홍보팀에 했다는 말이다. 안 좋은 기사가 나가는 걸 왜 막지 못했느냐는 질책이었다.
대기업뿐만이 아니었다. 공공 시설물의 방재 점검을 책임지는 소방서도 매한가지였다. 기자와 동행했던 소방서 당국자는 관할 구역 내 건물에서 허점이 발견되자 당황해했다. 점검을 허술하게 했다는 지적을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철저한 점검을 다짐하는 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러면서 “안전관리에서 규정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주의 인식”이라고 둘러댔다.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소방관이 할 말은 아닌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고 한다. 하지만 “왜 막지 못했느냐”던 기업 임직원과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소방관처럼 자신의 잘못이 잊히거나 숨겨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세월호 참사 자체가 잊히기를 바라는 관련자들도 있을 것이다.
한 달 넘도록 실종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은 “잊혀질까 봐 두렵다”고 한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 같아 초조해한다. 그들은 관심이 줄어들어 수색이 소홀해질까 봐,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세월호 사고를 과거 일로 생각할까 봐, 세월호 참사로 새삼 기억났던 과거의 사고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이 이대로 잊혀질까 봐 두렵다.
치부를 가리고 싶은 것은 본능이다. 드러난 부끄러운 모습이 빨리 잊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대로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병든 부분을 말끔히 제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시 비극이 일어날 것이다. 잊을 수 없는 상처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사람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대형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세월호 참사가 기억나는 일만큼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지난 주말, 기사에서 안전 문제를 지적했던 다중이용시설들을 다시 방문했다. 피난 안내도의 크기는 커졌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찾는 것도 한결 쉬웠다. 비상구를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어졌다. 그러나 일부 건물은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지점에 판매대가 버젓이 자리 잡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해당 건물 담당자에게 바란다. 드러난 치부는 ‘잊지 말고’ 고쳤으면 좋겠다. 비슷한 치부를 갖고 있는 다른 건물 책임자들도 잊지 말고 고치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잊지 않고 다시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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