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新舊정권 낙하산끼리 맞붙은 KB금융의 주도권 싸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4일 03시 00분


최근 불거진 KB금융의 내부 갈등은 ‘낙하산 인사’ 폐해의 종결판을 보는 듯하다. KB국민은행은 어제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해 긴급 이사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주에 다시 열기로 했다. 국민은행의 내홍은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이사회와 행장의 견해차로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KB금융지주 임영록 회장과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 사이의 주도권 다툼이다.

지난달 24일 은행 이사회는 IBM의 전산시스템을 유닉스로 전환하는 사업을 의결했다. 이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는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임 회장 측 인사들로 구성된 이사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행장과 감사는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했고, 이에 맞서 이사회는 감사 해임을 거론했다. 보다 못한 국민은행 노조가 어제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동반 사퇴를 요구했다.

KB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낙하산끼리 갈등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구(舊)정권의 낙하산인 금융계 내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와 신(新)정권의 연피아(금융연구원+마피아)의 암투가 가세했다. 임 회장은 기획재정부 전신인 재정경제부 차관 출신의 ‘모피아’다. 이명박 정부 시절 KB금융지주 사장에 선임돼 작년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반면 이 행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새로운 파워그룹으로 부상한 금융연구원 출신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전문위원을 지낸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서근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등이 이 연구원 출신이다. 서로 다른 동아줄을 타고 들어온 회장과 행장이 집안싸움을 벌이다 경찰에 신고한 꼴이다.

상층부가 내분에 골몰하는 사이 은행에선 금융사고로 곪아터지고 있다. 직원들이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해 100억 원을 횡령하는가 하면 일본 도쿄지점에서 4000억 원대 부당대출을 해주고 리베이트를 챙겼다. 국민은행의 순이익은 2012년과 2013년 연달아 30% 가까이 줄었다.

KB금융은 자정 능력을 상실했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과 함께 KB금융지주를 철저히 검사해 내부 통제와 경영의 문제를 밝혀내야 한다. 금융위원회는 걸핏하면 내부 싸움을 벌이는 지주회사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정권 핵심이 관피아를 내려보내지 않는 일이다.
#KB금융#낙하산 인사#임영록#이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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