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에서 탈출이라도 한 것일까.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노란 호박이 점잖게 좌정해 있다. 여기저기 흩어진 물방울 문양의 빨간 풍선은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기분도 둥실 떠오르게 한다.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쿠사마 야요이 전에 나온 작품들은 보는 순간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려서부터 정신질환을 앓은 작가는 고통과 절망을 자기 치유의 예술로 승화시켰다. “나는 나를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유년 시절에 시작되었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예술을 추구할 뿐이다.”
▷고난과 역경은 위대한 예술가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랬다. 지독한 궁핍과 정신질환에 시달린 그는 자화상을 유독 많이 그렸다. 모델을 구할 돈이 없었다. 생전에 팔린 작품은 단 한 점. 새 캔버스를 살 돈이 없어 그림 위에 또 그림을 그려야 했다. “실패를 거듭한다 해도, 퇴보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해도, 일이 애초에 의도한 것과 다르게 돌아간다 해도, 다시 기운을 내고 용기를 내야 한다.” 이런 결기로 불멸의 신화를 남긴 고흐가 말했다. “진정한 화가는 양심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20세기 팝아트의 거장인 앤디 워홀은 새로운 예술관을 제시했다. 저 높은 곳에 있던 예술을 대중이 즐길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한 그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돈 버는 것은 예술이다. 일하는 것도 예술이다. 사업을 잘하는 건 최고의 예술이다.” 예술가와 사업가를 겸한 신개념 직업 유형을 창출했던 워홀이 남긴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외국 기관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고 전시회를 열었던 ‘얼굴 없는 사진작가 아해’의 존재가 마침내 드러났다. 그는 부(富)를 이용해 스스로에게 예술가란 월계관을 씌웠다. 워홀과 달리 사업가 혹은 사진작가로 자기 정체를 숨기려 했던 그에게 5억 원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워홀이 살아있다면 ‘현상금 걸린 사진작가’를 보고 뭐라고 말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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