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엘리트 공무원 사용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9일 03시 00분


박중현 경제부장
박중현 경제부장
“중국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이고 사회주의 국가예요. 인민들 눈이 있는데 아무리 엘리트라도 관료 월급을 선진국처럼 많이 줄 순 없거든요. 그래서 각자 알아서 치부(致富)해도 눈감아 준 겁니다. 계속 이렇게 둘 순 없죠. 부정부패 척결로 시작했지만 결국 싱가포르처럼 공무원에게 제대로 보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쪽으로 갈 겁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다음 날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한 경제학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반부패 드라이브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수부 마피아’의 민관 유착에서 시작돼 급물살을 탄 관피아 개혁 논의를 지켜보며 그 학자의 얘기가 계속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공직사회 개조를 약속하고 4일 뒤 정부는 5급 공무원 공채(행정고시) 선발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여 2017년에 5급 공채와 민간 경력자의 채용비율을 반반으로 맞추겠다고 발표했다. 낙하산 관행을 없애기 위해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제한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재취업을 제한하는 민간기업의 수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또 대가성,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100만 원이 넘는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는 ‘김영란법’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관료사회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부패와 민관 유착의 소지를 물샐틈없이 차단하는 방안들이다. 주요 표적이 된 행시 출신 엘리트 공무원들 사이에선 한숨이 새나온다. “이젠 무조건 정년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 갈 곳도 없는데 후배들을 위해 용퇴하라면 누가 옷을 벗겠느냐” “평생 기업 다니는 친구들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는데 은퇴 후 돈 벌 길까지 막으면 어떻게 하나. 행시 인기가 뚝 떨어질 거다” 등 볼멘소리 일색이다.

이들의 불만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센티브’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경제원칙은 엘리트 공무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데다 주말에도 수시로 불려 나가고, 부처가 세종시로 옮기면 군말 없이 두 집 살림을 하면서 30여 년을 버틴 끝에 ‘공무원의 별’인 1급, 차관급이 돼 봐야 월급은 대기업 부장 수준이다. 조기 퇴직이 일상화된 민간기업보다 낫다 해도 승진 길이 막히면 정년에 관계없이 옷을 벗어야 한다. 지급액이 많고 일찍부터 주는 연금이 그나마 위안이지만 이 부분에도 곧 개혁의 칼날이 날아들 기세다.

평생 수재 소리를 듣다가 명문대에 들어가 국가고시를 통과한 엘리트들이 만족하긴 힘든 조건이다.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민간 경력자를 뽑는 데에도 이런 조건들은 걸림돌이 된다. 유능한 민간의 인재들이 이 정도 대우를 받기 위해 공직에 입문하려 할까. 들어갔다가 다시 민간에 나갈 때 3년간 취업이 제한되는 악조건까지 붙는데 말이다.

열악한 보상에 대응해 고위 공무원들이 ‘알아서 챙긴’ 대표적 보상법이 공기업, 협회 등에 낙하산으로 취업하는 길이었다. 재직 중 손해 본 걸 은퇴 후 몰아서 보상받는 시스템이다. 이 길은 세월호 참사로 낱낱이 문제가 드러나 곧 막히거나 대폭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남는 문제는 앞으로도 우수하고 헌신적인 관료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글로벌 경쟁을 치르는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공무원의 경쟁력은 선진국 수준까지 높아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이제 공무원 쓰는 방법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가 됐다. 안전비용이 빠진 저렴한 서비스의 선호가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면 엘리트 공무원들을 제값보다 싸게 써온 오랜 관행은 민관 유착과 부패를 낳았다. 공직사회 개혁의 밑그림을 그릴 때부터 고위 공무원의 처우 등 인센티브에 대한 고려가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공무원#관료사회#인센티브#낙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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