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호텔 오른쪽 옆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산 끝까지 올라가면 나오는 두 동짜리 아파트. 안대희 전 대법관은 1989년부터 올해 2월까지 25년을 이 아파트 1층에서 살았다. 안 전 대법관이 올해 3억4500만 원에 49평(163m²)짜리 이 집을 팔았으니 서울 시내에서 비싼 수준은 아니다.
그는 2001년 부인이 아들을 좀 더 나은 학교에 보내고 싶어 인근 다른 아파트로 주소지를 옮긴 사실을 알고 당장 원위치할 것을 지시했다. 친분이 없는 사람이 끼면 꼭 밥값은 본인이 냈다. ‘국민 검사’ 안대희의 힘은 이런 청렴성에서 빛이 났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안 전 대법관은 지난해 7월 이태원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서 공직자 시절 동안 남편과 아빠 때문에 희생한 가족들에게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 했다. 예전 집보다 3배 비싼 중구 회현동 아파트로 이사했고 자식들에게 5000만 원씩 증여도 했다.
그는 올해 초 사석에서 기자와 만나 “변호사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자리는 받은 거다. 그동안 고생한 우리 가족들을 위해 힘껏 벌 거다. 그 대신 부끄러운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의 문턱을 넘지 못한 건 전관예우 논란 때문이었다. 검찰에서 서울고검 검사장까지 지내고, 법원에서 대법관을 지낸 그는 전관예우의 파워로만 따지면 따를 자가 없다. 10개월 동안 22억 원을 번 건 일정 부분 전관예우 덕을 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국민 검사’의 낙마를 보면서 개인에 대한 실망보다 더 씁쓸한 건 고위직 중 그만큼 청렴하게 살아온 이가 많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이름 있는 고위직 인사치고 비밀번호 누르지 않고 들어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 강남의 높은 주상복합에 취재하러 갔다가 건장한 경비원들에게 끌려나온 적도 많았다.
안 전 대법관처럼 공개적으로 본인과 배우자는 물론이고 부모와 자식까지 3대 재산을 고지하는 공직자도 많지 않다. 상당수는 고지 의무가 없는 자식과 부모 재산은 공개하지 않는다. 안 전 대법관과 자식 모두 병역을 마쳤고 올해 기부는 정치적 논란이 있다 쳐도 그동안 꾸준히 기부도 해왔다.
안 전 대법관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공직을 맡으려면 대법관 퇴임 후에도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변호사 개업도 안 하고 무료 변론 같은 봉사활동이나 했어야 했다.
청와대는 고위직 인선 때마다 “적임자가 없다”고 한숨을 내쉰다. 말이 좋아 적임자지 검증을 통과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는 게 내부 이야기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의 잣대는 점점 엄격해지는데 현실에선 마땅한 인물을 찾기 힘든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세월호 참사부터 총리 후보자 사퇴까지 우리 모두가 자성해볼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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