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일은 정말 어렵다. 우리는 일제가 한 세기 전, 주안과 동래에서 처음 생산했던 대만식 천일염을 전통소금이라고 착각한다. 진흙으로 만든 소금가마에서 끓여낸 자염(煮鹽)이 우리의 진짜 전통소금이라는 역사적 진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교육 현장에서의 역사인식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제가 남겨준 기형적이고 반(反)인격적인 문·이과 구분 교육이 오히려 학생의 적성을 살려주고, 학습 부담을 덜어주는 훌륭한 제도로 둔갑해버렸다. 21세기의 선진교육이 ‘모두를 위한 과학(Science for all)’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문·이과 구분 교육은 처음부터 학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서양의 오랜 학문적 전통과 교육제도에 대한 경험도 없이 ‘화혼양재(和魂洋才)’를 추구하던 일본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문·이과 구분 교육이었다. 최소의 비용으로 사회에 필요한 기능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기술자에게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주고, 행정·관리직 인력에게 어려운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것은 불필요한 사치이고 낭비였다. 결국 학생에게 필요한 전인교육과는 거리가 먼 제도였다.
이 방식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에게도 매력적이었다. 다른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 교육 덕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졌다.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와 있는 우리 사회에서 기본적인 과학상식도 이해하지 못하는 ‘문과’ 출신과 최소한의 인문학적 소양조차 갖추지 못한 ‘이과’ 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문·이과 구분 교육의 폐해는 심각하다. 대학에 들어온 후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말초적 감성만 자극하는 얄팍한 길거리 인문학에 속절없이 빠져들고, 과학의 탈을 쓴 엉터리 유사(類似) 과학에 휘둘리는 것도 이런 교육 탓이다. 세월호 참사의 수습에 필요했던 선박의 복원력과 세월호의 항적(航跡), 그리고 잠수에 대한 간단한 과학적 정보조차 소화하지 못하는 비정상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2500년 전에 등장했던 가장 원시적인 잠수장비인 습식 다이빙벨이 첨단장비로 둔갑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한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던 문·이과 구분 교육이 이제는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문과와 이과의 꼬리표만 뗀다고 될 일이 아니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특히 과학과 수학의 경우가 그렇다. 오로지 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하는 과학 개념의 이해와 문제풀이 중심의 교육으로는 문·이과 구분 폐지가 불가능하다. 60%를 넘는 문과형 학생들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주관 자연관 생명관을 이해시키고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정체와 의미를 알려주는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교육부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정 개정과 수능 체제 개편은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 문과 출신의 교육학자와 교육부 관료로 구성된 연구위원회가 문·이과 통합교육의 절박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교육학과 정치학까지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은 황당한 것이다. 한국사를 포함한 ‘역사’ 과목은 감춰두고 ‘사회’와 ‘과학’의 균형을 강조하는 꼼수도 용납할 수 없다. 이러다 문·이과 통합이 아니라 이과 폐지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없는 교육학자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기회를 구걸해야 하는 과학기술계의 입장도 난처하다. 세월호 참사의 혼란을 틈타 밀실에서 만들어지는 교육과정과 수능 개편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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