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지방선거 사전투표를 했다. 사는 곳과 관계없이 그 자리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해주는 시스템은 획기적이었다. 부재자투표제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사실 번거로웠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으로 이젠 어디서나 쉽게 투표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민주주의 선거제도가 도입된 이래 신분 차별, 성차별이 없어진 데 이어 이젠 지리적 장벽도 무너지고 있다. 거의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시대다. 단, 예외는 있다. 수감 중인 죄수에겐 아직 투표권이 없다. 또 당연한 얘기지만 미성년자에게도 투표권이 없다. 투표를 못하는 19세 미만은 한국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미성년자 투표권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 왔고 특히 선거 제한연령을 낮추자는 주장은 끊임없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올 4월 “미성년자는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고 경험·적응능력 부족으로 인해 의사 표현이 왜곡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선거권 제한은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몇 살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있지만 선거권 제한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더 급진적인 주장도 있다. 작년 뉴욕타임스는 선거 가능 연령을 낮출 게 아니라 아예 갓난아기부터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되 부모가 대리투표를 하게 하자는 ‘드메인 보팅(Demeny Voting)’이란 개념을 소개했다. 이는 미국의 정치학자 폴 드메인(Paul Demeny)이 1980년대부터 주장해온 바다. 그는 유럽의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미성년자의 선거권 제한이라고 봤다. 노인들은 투표권이 있지만 어린이들은 투표권이 없으니 국가의 자원은 어린이보다 노인들의 이해관계를 더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분배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육아의 경제적, 사회적 부담을 증가시켜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그러니 아이들의 이익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부모들이라도 아이들의 투표권을 대리 행사해야 한다는 게 드메인의 주장이다.
투표권이 재산권과 유사하다고 보면 꽤나 일리 있는 얘기다. 부모가 자식의 이름으로 부동산이나 주식을 거래할 수도 있고,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대리로 투표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는 다르다. 대리투표는 헌법에 명시된 직접투표의 원칙에 위배된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 또 부모와 아이의 정치적 견해나 신념이 다를 수도 있고 심지어 부모 사이에도 의견차가 생길 수 있다. 독일과 헝가리 등 드메인 보팅에 대한 논의가 국회 차원에서 이뤄진 사례가 있지만 실제로 도입된 곳은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드메인의 해법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하지만 그의 문제의식만큼은 되새길 만하다. 미성년자의 참정권은 보통선거라는 가치의 마지막 퍼즐이다. 미래 세대를 위한 효율적 자원 배분이 이뤄지도록 다양한 대안을 놓고 더 많은 토론이 벌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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