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하정민]유병언 헌터 열풍의 이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5일 03시 00분


하정민 국제부 기자
하정민 국제부 기자
‘바운티 헌터(Bounty Hunter).’ 범죄자를 잡는 민간인 현상금 사냥꾼을 말한다. 19세기 서부 개척시대 미국 정부는 흉악범을 잡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국토는 광활한데 치안 인력이 부족했다. 결국 미 정부는 범인을 검거하거나 사살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기 시작했다. 1873년에는 이를 정식 직업으로 인정하고 면허도 발급했다.

바운티 헌터는 지금도 미국에서 매년 약 3만 명의 범죄자를 잡는다. 전체 도망자의 무려 90%에 이르러 비용 및 시간 절감효과가 크다. 민간인에게 타인의 목숨을 빼앗을 권한을 줘도 되느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다.

21세기 한국에 때 아닌 바운티 헌터 열풍이 불고 있다. 검경이 도피한 세월호의 실소유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에게 5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기 때문. 그가 한때 은신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전남 순천 송치재휴게소 인근 별장 일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유병언 헌터’들이 북적여 조용히 지내던 산골 주민들이 불편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전까지 가장 높은 현상금은 5000만 원으로 모두 4명에게 걸렸다. 강도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탈옥해 2년 반 동안 도피 행각을 벌인 신창원, 연쇄살인범 유영철, 경찰관 2명을 살해한 이학만, 미제로 남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 범인 등이다. 무려 10배 수준인 5억 원의 현상금을 유 씨에게 내건 것은 그의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검경이 그를 잡으려 얼마나 애를 쓰는지 잘 보여준다.

하지만 약간 씁쓸하다는 생각도 든다. 구원파 신도와 비호 세력의 조직적 협조가 있었다지만 참사가 발생한 지 벌써 50일이 지났는데 수사기관이 유 씨의 행방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70대 노인인 유 씨는 신창원처럼 혈기왕성한 30대가 아니며 한국이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지도 않다. 또 5억 원은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

역대 세계 최고액 현상범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 미 정부는 무려 5000만 달러(약 500억 원)의 돈을 걸었지만 그는 이를 비웃듯 신출귀몰한 도피 행각을 이어갔다. 미 정부는 사건 발생 10년 만인 2011년 5월에야 그를 사살했다. 이 작전에 가담했던 특수부대원 매트 비소넷의 회고록 ‘만만한 날은 없다(No Easy Day)’와 이를 소재로 한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 따르면 빈라덴 검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30대 초반 여성 요원이다. 미쳤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수년간 빈라덴의 행적만 파고들어 희대의 테러리스트를 잡는 데 성공한다.

즉 아무리 거액의 현상금이 걸려있다 해도 민간인이 전문 훈련을 받은 수사기관 관계자보다 뛰어나긴 힘들다. 검경도 애가 타겠지만 조직의 명예를 걸고 유 씨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하루속히 그를 체포해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국민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할 시점이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유병언#현상금#구원파#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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