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지방선거 개표가 한창이던 4일 밤. 지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런 내용이 게시됐습니다. “그냥 알아서 먹으면 되지…”라고 생각하던 순간 순식간에 댓글이 꼬리처럼 이어졌습니다. ‘진리의 프라이드’, ‘매콤한 양념치킨이 최고죠’, ‘뼈 바르기 귀찮은데 순살치킨은 어때요’ 등 골라주는 이들도 진지했습니다. 지인은 추가로 물었습니다.
“어떤 브랜드 치킨을 먹는 게 좋나요?”
‘요즘 ○○치킨이 잘나가요’, ‘그래도 △△치킨이 1위죠’, ‘◇◇치킨에서 신 메뉴 많이 나왔던데’ 등 날카로운 분석이 또 이어졌습니다. 지인이 “다수결의 원칙으로 ○○치킨의 프라이드를 먹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그냥 먹고 싶은 걸 먹으면 되지. 글을 쓰고 사람들의 의견을 받는 과정이 오히려 더 번거로워 보였습니다. 지인의 대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나 스스로는 뭘 먹어야 할지 결정을 못하겠어. 많은 사람들이 추천한 것을 골라야 마음이 편안해져.”
살면서 우리 모두는 많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그때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합니다.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고뇌에 빠진 햄릿처럼 말이죠. ‘인생은 B(Birth·탄생)와 D(Death·죽음) 사이의 C(Choice·선택)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일지 모릅니다.
과거엔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했다면 요즘은 무슨 치킨을 먹어야 좋을지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시대가 됐습니다. SNS와 온라인 주요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뭘 골라 달라, 선택해 달라는 식의 ‘결정 요청’ 글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무슨 옷 사야 하나요”부터 “세종대로 사거리인데 신호등을 가로-세로로 건널까요, 세로-가로로 건너야 할까요”, “영화관 왔는데 무슨 영화 볼까요”까지. 일단 멈춘 후 누군가에게 물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런 상황을 빗대 최근 SNS상에서는 ‘결정 장애’ 혹은 ‘선택 장애’라는 신조어가 인기 키워드가 됐습니다. 밥 뭐 먹을지 고민인 사람을 위해 하루 치 도시락부터 한 달 치 먹을거리를 알아서 배달해주는 업체들도 생겼습니다.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사용자의 쇼핑 습관을 분석해 알아서 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결정 장애 사회가 만든 새로운 사업인 것이죠.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을 결정하기 어렵다 보니 진지한 인생 문제에도 SNS상에서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고는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애 낳았는데 이름을 무엇으로 지을까요”라며 작명소보다 SNS에 먼저 물어보는 부부나 “결혼을 앞두고 선을 봤는데 A, B 중 누구랑 사귈까요”를 물어보는 결혼 적령기 남녀, “어느 회사에 취직해야 할까요”를 물어보는 취업 준비생….
질문을 남긴다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기 때문 아닐까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소신껏 결정하기엔 시행착오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각박해진 시대, ‘다수결’을 따를 수밖에 없는 사회 분위기가 결정 장애를 낳은 건 아닌지요.
6·4지방선거를 앞두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누굴 뽑아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습니다. ‘공약을 보고 소신껏 투표하자’는 말을 알면서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 6·4지방선거 이후에는 적어도 무슨 치킨을 먹을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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