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말은 삼겹살과 같다. 겉으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맥락을 잘못 짚으면 엉뚱한 기사를 쓰기 십상이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필자는 이번에 제대로 잘못 짚었다. 이정현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의 사의 표명을 두고서다.
엊그제 한 언론이 이 사실을 보도했다. 이 전 수석은 올해 초부터 “내일이라도 좋은 분이 오면 물러날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지난해 말 ‘자랑스러운 불통’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마음을 비운 듯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그였기에 사의 표명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의 사의 표명을 전하는 언론 보도가 희한했다. 기사에 등장한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수석이 청와대에서 나온 뒤 장관으로 입각하거나 7·30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입각한다면 ‘영전’이요, 선거에 나선다면 ‘차출’이다. 이런 ‘사의 표명’은 금시초문이다.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의(辭意)’가 아니라 감사하게 여긴다는 뜻의 ‘사의(謝意)’라면 모를까.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변화를 요구했다. 국가 개조는 국가의 정점인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게 인적 쇄신이다. 무슨 큰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하나. 이유는 하나다. 그가 대통령의 우두머리 참모이기 때문이다. 이제 관심은 청와대 인적 쇄신에 맞춰져 있다. 그 중심에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이 전 수석이 있었다.
8일 서둘러 그가 교체됐다. ‘조용한 퇴장’이었다면 안쓰러움이 북받쳤을 게다. 하지만 이미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의 의원직 사퇴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 동작을에 출마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이 전 수석이 재·보선에 나선다면 지방선거보다 더한 ‘박근혜 선거’가 될 게 뻔하다. 큰 선거를 치른 지 두 달도 안 돼 여야가 또다시 박 터지게 싸울 일만 남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 전 수석의 퇴진을 두고 “대통령을 위한 도마뱀의 지혜”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이 전 수석이 잘라낸 건 자신의 몸이 아니라 인적 쇄신의 진정성이다. 이 전 수석은 2012년 광주에서 낙선한 뒤 총선 출마 얘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쳤다. 사퇴 전날에도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사의를 표명할 시기를 보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내 입장을 얘기하겠다”고 연막을 쳤다.
“국민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지켜본다.” 정치 초년생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론만 빠삭한 안 대표는 국민이 빤히 지켜보는데도 밀실공천에 나섰다가 혼쭐이 났다. 정치인이 정치적 행보에 나선다고 비난할 순 없다. 국민은 표로 의사를 전할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적 쇄신의 시작이란 말인가. 차라리 이 전 수석이 다시 호남에서 출마해 ‘바보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면 그나마 박수를 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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