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찰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사건과 국가정보원 여직원 감금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둘 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발생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다. 그래서인지 검찰은 두 사건 모두 주요 피의자들을 벌금형에 약식 기소했다. 회의록 유출 사건에서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만 벌금 500만 원에 약식 기소하고 김무성 의원 등 나머지 9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감금사건에서는 강기정 의원 등 4명을 벌금 200만∼500만 원에 약식기소하고 나머지 4명은 기소유예 또는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이 회의록 유출 사건의 결론을 오래전에 내려놓고도 두 사건을 같은 날 발표한 것도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감금사건에서 야당 의원들의 소환 거부로 수사가 지연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처벌 강도나 발표 시기로 볼 때 어느 쪽을 봐주려다 보니 ‘물타기식 형평’을 맞추기 위해 다른 쪽도 가볍게 처벌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회의록 유출 사건의 발단은 정 의원이 제공했다. 그는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8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포기했다”는 취지로 발언해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다. 그는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됐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그러자 야당은 정 의원이 국회 밖에서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회의록 내용을 누설하고 국정원 보관 발췌본을 무단 열람했다며 다시 고발했다.
당시 온 나라를 뒤흔든 것은 NLL 포기 발언을 둘러싼 여야 간 논란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회의록 유출은 ‘곁가지’였을 수 있다. 검찰은 정 의원이 대통령통일비서관 시절 회의록을 열람한 것은 문제가 없지만 국회의원이 된 뒤 그 내용을 의정 활동과 무관하게 공표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회의록이 작년 7월 국회 의결로 공개됐지만 사전에 공개한 것은 법을 어기고 외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잘못된 처사였다.
검찰은 회의록 내용을 발설한 혐의를 받은 김무성 의원을 당초 서면조사하려다 비판 여론이 일자 소환조사로 선회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사건일수록 검찰은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도 빈틈을 보여 수사 의지를 의심받았다. 그러다 보니 야당 의원들의 인권 유린행위에 대해서도 벌금형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