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보고 눈물이 났다는 얘기를 들은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지난달 22일 동아일보 내러티브 리포트를 통해 제주도의 모녀 사연을 소개한 후였다. 주제는 추락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딸과 초등학생 손녀를 돌보며 어렵게 메로(심해에 사는 흰 살 생선) 식당을 운영하는 여사장 이야기였다.
기사가 나온 날 아침부터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눈물이 나왔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오후 늦게 문자메시지 하나가 왔다. 여사장의 재기를 돕고 있는 제주신라호텔 박영준 셰프였다. 그는 “사장님이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며 한참을 우셨다”고 전했다.
사실 기사를 좀 더 꾸며서 쓰고픈 유혹을 참는 건 힘들었다. 직접 본 여사장의 딸은 미인이었다. 벽에 걸린 학사모 사진 속에선 더욱 그랬다. 그러던 그녀가 전신마비가 됐다. 사고 후 사라졌던 남편은 이혼소장과 함께 나타났다 다시 종적을 감췄다. 누구라도 분노와 안타까움을 참기 힘들었을 대목이다. 그럼에도 기자의 몫은 ‘꾸밈없이 진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감정을 억제한 게 기자만은 아니었다. 식당을 도와준 호텔신라도 그랬다. 제주 지역의 어려운 식당들을 돕는 ‘맛있는 제주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 호텔의 원칙은 식당 주인들에게 과장된 희망을 주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환갑을 넘긴 여사장은 호텔에서 인사하는 법까지 새로 배워야 했다. 홍보보다 사후 관리에 중점을 둔 것도 인상적이다.
이번 기사를 통해 깨달은 건 ‘가식 없는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사실 호텔신라 이외에도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기업은 많다. 학기 초엔 임직원들이 취약계층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고, 겨울엔 달동네에서 연탄을 나른다. 신입사원 교육에선 봉사활동이 빠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활동이 예상만큼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활동은 ‘보여주기식’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다.
꼭 사회공헌 활동이란 이름표를 붙이지 않더라도 기업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올해부터 이마트에 자체브랜드(PB) 자판기용 커피믹스를 공급하는 한 영세기업은 이마트로부터 먼저 계약 제안을 받았다. 우연히 커피 맛을 본 임원이 ‘일시적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일거리를 제공해 중소기업을 돕자’는 생각을 한 것이 계기였다. 해당 영세기업은 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도움의 의미가 더 커졌다. 이 역시 ‘보여주기가 아닌 진정한 상생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진심이 좋은 결과를 낳은 사례일 것이다.
제주도 식당을 취재할 때 가장 가슴을 울린 것은 전신마비 엄마를 둔 열한 살 딸의 한마디였다. 엄마가 누워 있는 모습만 기억하는 아이는 “엄마를 고치는 게 힘들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의사가 돼서 해보는 데까지 엄마를 고치고 싶다”고 했다. 취재 내내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감추느라 힘이 들었다.
진심은 사람을 움직인다. 진실과 진심은 굳이 꾸미지 않아도 충분하다. 기업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진실과 진심이 담겼으면 꾸미지 않아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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