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후보자와 내정자, 당선자와 당선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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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국무총리로, 이병기 주일대사를 국가정보원장으로 내정했다. 이럴 때 이들을 부르는 말이 내정자, 지명자, 후보자 등 제각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중 뭐가 맞는다고 하기 어렵다.

언론은 보통 국회 인사청문 대상 중 임명동의안 표결까지 필요한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등은 후보자로, 임명동의안 표결이 필요 없는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합참의장 등은 내정자로 써왔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법과 국회법에 따라 정부가 국회에 내는 인사청문요청안은 임명동의안 표결 대상이건 아니건 모두 ‘후보자’라 쓰고 있다. 따라서 내정 발표 이후엔 ‘후보자’로 쓰는 게 무난할 듯하다. 다만, 장관급이면서도 인사청문 대상이 아닌 공직자는 ‘내정자’로 쓰면 된다.

비슷한 논란이 ‘당선자’와 ‘당선인’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이동관 대변인은 “앞으로 당선인으로 써 달라”고 언론에 요청했다. ‘놈 자(者)’ 대신 ‘사람 인(人)’을 쓰고 싶다는 거였다. 그는 요청 근거로 “헌법을 제외한 대부분 법률은 당선인이란 용어를 쓰고 있고 중앙선관위가 수여하는 증명서도 당선인증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헌법재판소는 “헌법 67조 2항, 68조 2항 등은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논란과는 상관없이 ‘당선인’은 그 후 국회의원 당선인, 교육감 당선인 등으로 쓰임새가 늘어났다. 이유가 뭘까. 바로 ‘말맛’ 때문이다. 우리말에는 동의어이지만 말맛이 다른 것이 꽤 많다. 변호사와 변호인, 노숙자와 노숙인도 그러하다.

변호사는 변호사 자격을 얻은 사람을 이르는 직업용어로 무색무취하지만 변호인은 뭔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게 새로운 이미지와 결합된 ‘말맛’이다.

그래서일까, 노숙자란 표현도 요즘 들어 노숙인으로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는 한발 더 나아가 노숙인의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고 밝고 희망적인 명칭으로 ‘자활인’을 선정했다고 4월 초에 밝혔다. 국립국어원 웹사전도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해 ‘당선인’과 ‘노숙인’을 표제어로 삼고 있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언젠가 ‘기인(記人)’으로 불리는 날이 오는 건 아닐는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후보자#내정자#당선자#당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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