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국민을 비통의 시간으로 몰아넣은 세월호 참사. 그 고통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참사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참사는 그 영향과 파장이 사회 전반에 넓고 깊게 남을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0일 ‘세월호 참사와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세월호 참사는 대통령이 ‘국가 개조’를 언급할 만큼 큰 사건입니다.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언론 보도는 어떤 방향이 돼야 할지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진강 위원장=세월호 사건은 발생 초기엔 단순 과실에 의한 선박 침몰 사고로 알려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유례없는 초대형 사건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한민국의 민낯이 세계에 드러난 수치스러운 사건이면서 6·4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된 정치적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이 국가적 사건을 언론은 제대로 다루었느냐를 놓고 보면 국민은 후한 점수를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고희경 위원=보통 사건이 나면 사건 자체로 이야기가 되는데, 이번의 경우는 그것이 보도되는 과정, 취재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많은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주게 된 것은 배가 침몰하는 과정을 마치 중계방송처럼 지켜봐야만 했다는 고통 때문일 것입니다.
김성태 위원=침몰 사고가 난 4월 16일 이후 6월 9일까지 세월호 관련 기사 건수를 검색해 보면 동아일보는 1268건으로 매일 25건 정도의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경쟁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었습니다. 보도 건수가 많다는 것은 관심을 많이 가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제목 위주로 기사를 보면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언론보도의 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침몰 초기의 언론보도는 속보 경쟁이 가져온 정확성의 부재로 여러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지난해 7월에도 재난보도 관련 토론을 했었죠. 그때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을 침해하는 보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고, 재난보도 관련 준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언론이 좀더 짚어줬어야 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 위원장=희생자들의 ‘죽음’과 살아 돌아온 사람의 ‘삶’을 제대로 짚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숫자만 현황판처럼 매일매일 보도하는 데 그치지 말고, ‘죽음의 숭고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냐,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생명의 고귀함’을 차원 높게 다뤘다면 유가족들의 분노와 응어리진 마음을 더 잘 쓰다듬어 줄 수 있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지금 살아 돌아온 사람들의 삶은 논외로 돼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유가족, 실종자들 가족만큼 트라우마가 심한 상황일 수 있습니다. ‘적의는 적의로 다스릴 수 없고, 적의는 호의로만 다스려지고 가라앉힐 수 있다’는 어느 성인의 말씀대로 분노와 허탈한 마음은 분노와 적개심으로 다스릴 수는 없습니다. 동아일보가 종교인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슬픔 이길 희망 찾아’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생존자들의 향후 삶과 관련한 취재를 하려고 하면, 당사자 또는 가족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어서 그런 점도 각별히 유념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장=살아 돌아온 사람들을 위해 사회는 어떻게 해줘야 하나라는 방향으로 언론이 가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김사중 스탠더드 에디터=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이 분노, 안타까움, 비통함 등 아픔을 얘기했지만 가장 눈에 띄면서도 많이 등장한 표현은 ‘미안하다 죄송하다 부끄럽다’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희생된 데 대한 죄책감, 도움을 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 침몰 후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국가개조 작업과 같은 대책도 분야별로 철저히 점검해 마련해야겠지만 우선적으로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원장=이번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김 위원=이번 사태는 단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맥락적인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세월호 참사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10가지 이상 한꺼번에 벌어져 생긴 사건 같다고 말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문이 심층보도를 통해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고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는 실천적 캠페인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 위원=사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경우에는 구조된 사람도 있었고 재난을 극복하는 스토리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단 한 명도 살아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특정한 집단에 분노를 쏟고 끝을 낸다면 우리가 정말 이 문제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이성적으로 치밀하게 다뤄야 했던 것들이 희석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 위원장=침몰 초기에 실종자 300여 명의 구조 가능성이 어느 시점에 얼마나 있었는지 언론이 분석했어야 합니다. 구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구조를 못해 희생이 된 것이냐, 이 부분이 앞으로 쟁점이 될 것입니다.
윤영호 스탠더드에디터=신동아 6월호에 ‘세월호 언론보도 난맥상’을 기고한 한 시사평론가는 대다수 언론이 한쪽으로는 골든타임을 얘기하면서 다른 쪽으론 열흘이 지나도록 ‘에어포켓’을 언급하는 모순된 상황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해상 사고에서는 생존자를 구할 최적의 시기인 골든타임을 놓친 순간 생존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지 않습니까. 물론 실종자 가족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려는 측면도 있었겠지만 이런 희망 고문이 오히려 그들을 더 힘들게 하거나 자극하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는 거죠.
김 위원=또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한 비판과 더 나은 방향으로의 제안에 더 주력했으면 바람직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가족들이 환경이 열악한 진도체육관에 수백 명이 모여 장기간을 보냈는데 컨테이너박스든 빨리 대안을 마련하라는 식으로 언론이 일찍 지적해줬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고 위원=너무 조심스럽고 분노와 슬픔이 크니까 팩트에 접근하기가 어렵고 알면서도 보도를 못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박 스탠더드에디터=동아일보가 작년부터 ‘시동 꺼! 반칙운전’이라는 교통안전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해당 지역의 교통사고율이 1년 사이에 줄어들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언론의 책임은 속보와 사실 전달도 있지만 대안 제시나 사회감시 면에서 이런 대책들이 제대로 시행되고 작동이 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매체 홍수시대를 맞아 현장에서 취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유족이나 취재원들 입장에서 언론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보여지는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도 통제를 할 수는 없겠죠.
이 위원장=사실 재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경쟁지보다 더 빨리 현장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보다도 이 사고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이 일차적인 책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쉽진 않겠지만, 후유증이 오래가지 않도록 잘 마무리하는 쪽으로 언론이 후속보도를 잘해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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