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길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앞에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어’ 하는 사이 내 코앞까지 와 있는 아저씨. 나도 멈췄고, 아저씨도 멈췄다. 나는 결국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여기 일방통행 길…” 내 말은 끝맺지도 못한 채, “일방통행은 무슨! 내가 여기서 장사만 몇 년짼데, 당장 차 빼!” 아저씨의 고함과 욕설을 들어야 했다. “여기 바닥에 일방통행이라고 쓰여 있는…” 역시 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아저씨는 계속 고함을 지르셨고,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의 얼굴과 너무도 커다랗게 바닥에 쓰여 있는 일방통행이란 글씨를.
“너무 싫지.” 친구가 말했다. 명백히 너의 잘못이란 것,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인정하지 않는 사람, 사과하지 않는 사람, 도리어 큰소리치는 사람. “근데 참 많지.” 나도 참 많이 봐왔다. 내가 언제? 발뺌하고. 그게 왜 내 탓? 아닌 척하고. 너 나한테 왜 그래? 화를 내고. 넌 뭐 잘났어? 종국엔 상대를 비난하기까지 하는 패턴. 왜 어려울까?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난 그게 더 창피할 것 같은데. 상대가 빤히 알고 있는데 발뺌하고 뻔뻔하게 구는 내 모습이 더 창피할 것 같은데.
“미안하다는 말 자주 하지 말라고, 난 지적받은 적도 있어.” 친구가 말했다. “그럼, 사람들이 만만하게 본다고.” 친구는 회사에서 이런 일도 있었단다. 친구네 부서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다. 처음부터 그 일을 기획하고 추진했던 사람, 그러다 결국 사고를 친 사람들은 따로 있었지만, 친구 역시 같은 부서고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으니 자기도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은 친구뿐이었다. 모두가 자기 탓은 아니라고 발뺌하는 가운데, 혼자만 책임지겠다고 말한 친구. 결국, 그래 다 네 탓이다. 그 사고로 징계를 받은 건 친구 혼자뿐이었다. “너한테 미안해하지 않아, 그 사람들? 나중에라도.”, “글쎄, 그건 모르겠고 불편해…는 하지.” 혼자만 미안하다고 하면 바보가 되고, 혼자만 책임지겠다고 하면 왕따가 된다.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친구는 그래서 고민이 된다고 했다. 내 아이가 미안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못난 어른이 되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혼자 책임지고 혼자 손해 보는 외로운 어른이 되는 것도 싫으니,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고.
사실, 답은 너무 쉽다. 혼자가 아니면 된다. 모두가 미안해할 일엔 미안해하고, 모두가 책임질 일엔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그 쉬운 일이, 왜 이렇게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오늘도 TV에선 나만은 아니라고 한다. 오늘도 신문을 펼치면 나만은 책임이 없다고 한다. 오늘도 길을 걸으면 나만은 억울하다는 사람들과 마주한다. 혼자만 미안하다고 하면 바보가 되고, 혼자만 책임지겠다고 하면 왕따가 되는 세상, 우린 이미 그 속에 살고 있잖아? 그러니 나만은, 손해 보지 않겠어. 나만은, 책임지고 싶지 않아. 나만은, 살아남을 거야. 나만은, 나만은, 나만은. 혹 그 수많은 ‘나만은’이 모여 결국,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뻔뻔해져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우리 모두가 조금씩 더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도리어 더, 부끄러워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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