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허진석]‘보도 개입’ 확인은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6일 03시 00분


허진석 채널A 차장
허진석 채널A 차장
박근혜 대통령이 KBS 이사회가 올린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을 수용했다. KBS 뉴스 시간은 이미 정상화됐다. 시청자 눈에는 KBS 파업 사태가 일단락된 듯 보일 수 있다. 그런데 KBS 이사회가 ‘공정 방송’ 실현의 주요 자양분이 될 사안을 빠뜨려 안타깝다.

이사회는 9일 길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안전행정부에 제출했다. 같은 날, 길 사장은 이사회 해임 결의 무효 소송을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냈다.

길 사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사회는 해임 제청 안건을 처음 심의한 5월 26일 해임 건의를 하는 첫 이유로 ‘길 사장의 보도 통제 의혹에 대한 잇따른 폭로로 KBS 공공성과 공신력의 지속적 훼손’을 꼽았다.

그러나 정작 해임 제청안을 가결한 6월 5일 이사회에서는 ‘보도 통제’ 관련 부문을 뺐다. 길 사장의 직무수행능력과 리더십 상실, 공적 서비스의 파행 및 축소, 경영 실패 등을 문제 삼아 해임안을 가결했다.

길 사장은 ‘사태 촉발의 원인인 보도 통제 혹은 개입에 대한 사실 확인은 하지도 않고, 그 결과인 리더십 상실을 이유로 해임을 결정한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길 사장을 편들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이성과 상식에 기대본다면, 보도 통제나 개입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하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긴 힘들다.

이런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KBS가 길 사장 해임 이후에도 여전히 공정 방송 구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 선임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포함해서다. 여당이 다수인 이사회 구조에서 이사회가 추천한 인물을 대통령이 선임하는 현 방식으로는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보도 개입 문제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처음 주장했고, 보직을 사퇴한 KBS 부장들은 “김 전 보도국장의 폭로가 충분히 사실로 받아들일 만하다”고만 밝힌 상태다.

KBS 이사회나 구성원들은 사장을 직접 대면하고 겪었으니 ‘딱 봐도 아는 일인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 국민의 설득과 공감을 얻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길 사장이 소장을 제출한 날,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듣기 위해 KBS 이길영 이사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 이사장은 “나는 그것에 대해 코멘트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언론 업무를 맡은 이사는 ‘의견 없습니다. 조만간 정리가 되리라고 봅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만 보내왔다.

KBS 사장이 보도 통제나 개입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사회는 그것을 기록화하고 객관화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랬다면 공정 방송을 위한 후속 제도 마련에 큰 힘이 됐을 것이다.

그건 또, 비슷한 방식으로 사장을 임명하지만 KBS와는 다른 영국 BBC를 좇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다. 방송의 독립은 제도만으로 완벽하지 않고, 방송사의 조직 문화와 사회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
#길환영#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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